본문 바로가기

번역 작업 일지334

2023년 03월 06일 사카키는 커피를 단숨에 비우고 온 힘을 다해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남은 일을 끝냈다. “끝났습니다!” 기지개를 켜며 보고를 하는 사카키에게 카시와기는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그만 퇴근해요’라고 말했다. “카시와기 씨는?” “메일을 세 통만 보내면 끝이야.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간다면.” “그러면, 저도 남겠습니다.” “됐어. 우리 회사는 야근 수당이 잘 나오는 곳이 아니니까, 어서 들어가.” “그러면, 퇴근 카드 찍겠습니다.” 옹고집인 사카키에게 카시와기는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괜한 의심을 샀다는 듯이 사카키는 허둥댔다. “그게, 이미 밤도 늦었고, 여성분 혼자 사무실에 남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서요. 저도 이칙가야역을 이용하니까, 배웅하겠습니다.” “고풍스러운 신사였네요. 마음은 고맙지만,.. 2023. 3. 7.
2023년 03월 04일 지이잉...... 프지지...... 머리 위에서 형광등이 소음을 일으키며 깜빡였다. 남성의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려왔고,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카......” 사카키는 머그컵을 꽉 움켜쥐고 탕비실을 뛰쳐나왔다. “카시와기 씨!” 조명이 밝게 비추는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 화면 속으로 들어갈 듯이 보고 있는 상사에게 다가갔다. 카시와기라고 불린 여직원은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찡그린 표정으로 보았다. “음료를 들고뛰지 마세요. 흘리면 치우기 힘들잖아요.” “죄송합니다! 근데, 그것보다 탕비실에서......” “또 탕비실에 전등을 안 끄고 나왔죠. 어서, 끄고 와요.” 카시와기는 어두운 복도 끝에 있는 탕비실을 바라보면서 사카키를 재촉했다. “아니, 다시 가고 싶지 않습니다! 들렸다고요, 남자 목소리.. 2023. 3. 4.
2023년 03월 03일 코코노에 이오리가 눈을 뜨자, 낯선 천정이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거침없이 사무소를 비추었다. 반지하에 있는 탓에 특이하게도 창문의 위치가 높다. 아무래도 사무소 소파에서 잠든 모양이었다. 코코노에는 ‘업무’가 끝난 것이 새벽 무렵인 것을 떠올렸다. “어이, 주술사! 돌아왔냐?” 난폭한 노크와 함께 근처에 사는 지인이 복도에서 소리쳤다. 코코노에는 ‘어어’라고 대답하면서도 꿈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했다. 비린내서 콧구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쪽에 몹시 살찐 물고기의 끈적한 비늘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무언가가 시작되었어. 그렇게 느낀 코코노에에게 밖에 있던 지인은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코코노에는 ‘됐어’라고 답했다. “지금부터 ‘일’이다.” 코코노에는 일어서서 .. 2023. 3. 3.
2023년 03월 02일 대지의 박동이 느껴진다. 땅을 기어 다니는 용이 꿈틀거리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않고 집어삼키고는 어딘가로 운반한다. 그들은 흐름이라는 개념이므로, 그 끝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개의치 않는다. 가령 그것이 재앙이라고 해도. 그와 동시에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풍겼다. 바다에서 기어 나온 저주의 산물이 땅으로 올라와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잉 산소에 그저 헐떡일 뿐이었던 ‘그것’은 이윽고 양서류나 파충류로 진화한 것처럼 육지에 적응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코 마주칠 일이 없었던 용과 융합하는데. 2023. 3. 2.
2023년 01월 20일 얼빠진 대답이 돌아왔다. “형사님, 좀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어이없는 한숨이 나왔다. 스즈키는 뼛속까지 쓰레기인 모양이다. 뒤에서 젊은 순경인 이세가 조바심이 난 채로 노트북을 거칠게 타이핑했다. “그러면, 이런 건 어떻습니까? 제가, 형사님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그걸로 피해자분을 설득해 주시는 건.” “도움이 돼......” 비웃음이 올라왔다. “교통정리라도 해 줄 건가?” “말도 안 됩니다. 괜히 사고나 칠게 뻔합니다. 저란 놈은 재주도 없고, 장점이 하나도 없는 남자거든요.”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다만 제가, 옛날부터, 신끼가 좀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뭔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예지 해서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술이 덜 깼나? 토도로키는 다시 스즈키를 보았.. 2023. 1. 20.
2023년 01일 19일 “가게에도, 점원에게도 원한 같은 건 없습니다.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있다고 해도, 실제로 때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보통은.” 아아, 그렇겠네요, 틀린 말을 아니네요. 스즈키는 과장되게 긍정하더니 허허허라며 웃었다. 그 모습에 맥이 풀렸다. 평화롭네, 이 나라는. “맞은 점주는 자판기 수리비와 치료비만 지불하면 괜한 소란을 일으킬 뜻은 없다고 하기는 하던데.” “그렇습니까. 그거 참 다행입니다만, 그런데 대강 얼마 정도 들까요.” “글쎄. 난 자판기 회사도 의사도 아니니까. 뭐, 한 10만 정도는 필요하겠지.” “10만이라.” 스즈키는 느긋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다 늘어진 스웨터, 싸구려 재킷. 언뜻 보기에도 빈털터리다... 2023. 1. 19.
2023년 01월 18일 “뭐, 그렇다 치고.” 파이프 의자에 앉아서 책상 위의 메모를 손으로 구겼다. 뒤에서 취조기록을 작성 중인 후배의 시선이 느껴졌다. 진지하게 하라며 핀잔을 주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이렇다 할 감정의 움직임은 없었다. “그럼, 스즈키 씨. 술에 취해 술집 자판기를 발로 차고, 멈추려던 점원을 때린 사실이 있습니까?” “예에, 그것도 사실입니다. 천지신명에게 맹세코 진실입니다. 면목 없습니다만.” “때린 점원의 나이는 기억하시고?” “네. 나이는 저랑 비슷해 보였고, 저보다 마른 체형에 폴로티를 입었고, 그리고 머리카락 이 저보다 많았습니다.” 스즈키는 수염은 없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방금 형사부 사무실에서 대면했던 술집 점주의 부족하지 않은 소개였다. “그러면 스즈키 씨, 오늘은 왜 그렇게 취한 건지?.. 2023. 1. 18.
2023년 01월 17일 당신 참, 편안해 보이네. 토도로키 이사오가 말을 걸자 남자는 쑥스러운 듯한 얼굴로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검은 이끼가 낀 듯한 밤송이 같은 머리. 그 밑으로 넓은 이마가 번들거렸다. 굵은 눈썹, 지저분한 수염이 두드러지는 이중턱. 불룩한 볼이 탱탱했다. 처음 아닌가? 이런 곳은. 예에, 뭐, 면목 없습니다. 남자의 대답을 들으면서 현장에 있었던 제복경찰에게 받은 메모를 보았다. 또박또박한 글자로 남자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스즈키 타고사쿠, 49세.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끝내자고” 토도로키는 일부러 난폭하게 메모를 철제 책상 위로 던졌다. “뭘 말입니까?”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뚱뚱한 몸에 땡그란 눈동자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어울렸다. “이름 말이야. 진짜 이름을 말해야지.” “아, 형사님. 아.. 2023. 1. 17.
2023년 01월 14일 일요일 아키바하라는 왜 이렇게나 붐비는지, 호소노 유카리는 우울해졌다. JR소부센의 홈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에도 피부가 닿은 거리에 누군가가 있는 상태였다. 지상에 도착해 야마노테센 이용객과 합류하자, 인구밀도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높아졌다. 추월해서 앞서가려는 남성과 어깨가 부딪쳐 멈춰 설 뻔하다가 등 뒤로 다른 누군가와 충돌했다. 그 사람은 허둥대며 사과하는 유카리를 보지도 않고 멀어졌다. 개찰구를 빠져나오자 코스프레를 하는 소녀들이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남자도 있었다. 이야기로는 들었지만, 실물을 보니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지만, 땀에 젖은 겨드랑이가 눈에 들어왔다. 9월치고는 푹푹 찌는 날씨였다. 유카리는 기온보다 도시가 발산하는 열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2023. 1. 14.
2023년 01월 04일 어느새 반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이야기에 들어온 상태였다. 저마다 유령은 존재하느니, 저주는 진짜라는 , 아시야 도겐이 최강의 영능력자라는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시야 도겐은 최근 심령 특집 방송에서 인기를 얻은 영능력자이자, 유명한 아베노 세이메이와 라이벌 관계였던 것으로 유명한 음양사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람이다. 사토루도 방송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흔한 속임수와 틀리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었다. 이 학교의 아이들은 그런 저속한 오락 방송을 특히 좋아해서, 심령 특집 방송이 방송된 다음날은 꼭 이런 식으로 반 전체가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를 괴담 이야기뿐이었다. ―진짜, 한심하네. 사토루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책갈피를 끼워서 책을 덮은 뒤에 책상 속에 넣고.. 2023. 1. 3.
2023년 01월 03일 제1장 기 (1) 벨소리를 신호로 수업이 끝나고 담임교사가 교실을 나가자, 시노미야 사토루는 크게 한숨을 쉬고, 두 팔을 위로 뻗으면 기지개를 켰다. “야야, 들어봤지?” 책상 속에서 읽고 있던 책을 꺼내고 책갈피를 끼워두었던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2칸 뒤의 자리에 앉은 숏커트 머리의 여학생이 목소리를 높였다. “뭔데? 무슨 일인데?” 바로 옆에 서 있던 포니테일 여학생이 눈을 반짝이면 물었다. “미야베 마을의 7가지 불가사의 말이야.” “그런 흔한 괴담이랑 다르다니까. 이 마을 여기저기에 실제로 있단 말이야.” “7가지 불가사의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포니테일 소녀가 턱에 손가락을 대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딱히 훔쳐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두 사람은 너무 큰 소리로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떠든.. 2023. 1. 3.
2022년 12월 29일 “부재 중일 때 침입한 빈집털이가 때마침 귀가한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습격했을 수도 있겠지.” “이곳에 빈집털이, 말인가요?” 유이호가 노르스름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타카하시 호나미의 주거는 30년 된 저렴한 아파트였다. 유이호의 방과 비교하면 벽, 기둥, 바닥의 여기저기에 상처투성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확실히 오래된 건물이었다. 방금 들여다본 화장실도, 세면대와 욕조에 변색된 곳이 눈에 띄었다. 건물 주위도, 계단과 통로의 손잡이는 온통 녹이 슬어 있었다. 당연히 방범 카메라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여대생이 원해서 살고 싶어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집세가 저렴하다는 이유로만 선택했을 것이다. 아파트 주인에 따르면 총 10개의 방이 대부분 빈 방인 모양이다. 피해자를 제외한 주민은 .. 2022.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