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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작업 일지

2023년 8월 28일

by blacksnowbox 2023. 8. 28.

험악한 인상의 거한이 거대한 천막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어두컴컴하던 텐트 내부에 잠시 빛이 들어왔다가 곧바로 물러갔다.
서너 개의 야전 침대와 접의식 철제 의자, 철제 테이블 하나. 그 위에는 노트북과 서너 개의 소형 단말기. 테이블 옆의 바닥에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십자가가 그려진 구급의료함이 전부인 공간이었다.
거한은 들어오자마자 야전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괜찮은 겁니까?"

표현은 정중했지만 말투는 한없이 날카로웠다.

위압감을 느낌 의사는 엉거주츰 의자에서 일어나 거한을 보면서 대답했다.

"네, 뭐. 떨어진 돌이 이마를 스치면서 살짝 긁힌 정도니까요. 곧 깨어날 겁니다."

"그것 참 다행이네요.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자칫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면, 다들 각오해야 했을 테니까요."

가운을 입은 남자는 마른침을 삼키고, 두 손을 비비면서 비굴한 자세로 거한에게 다가갔다.

"아무렴요. 그 적은 단서로도 유적지 위치까지 찾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말입니다. 끝까지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모쪼록 위원회 쪽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거한은 남자의 양쪽 어깨를 잡아서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흐트러진 가운의 옷깃도 바로 잡아 주었다.

"당장 이번 프로젝트의 마무리나 신경 쓰세요. 목숨줄이 붙어 있어야 위원회고 뭐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깨끗한 흰색 가운에 빨간 물이 들어서야 되겠습니다. 마력 순환 이상 체질에 사라져도 괜찮을 사람을 찾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말입니다. 잘 챙기세요, 교수."

 

거한이 텐트를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교수라고 불린 남자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꾹 쥐었다.


--

강한 빛이 눈동자를 덮고 있는 눈꺼풀을 훑고 지나는 느낌에 눈을 떴다.
게슴츠레 뜬 눈의 시야는 뿌옇게 흐리기만 했다.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시 잠시 빛이 들이치고는 곧바로 어두컴컴해졌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그제야 눈앞에 또렷해졌다.
방금 빛이 들어왔다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는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정수리에서 아래로 천천히 남자를 훑어 내려오다가 부들부들 떨리는 꽉 움켜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말을 걸어보려고 해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목이 말랐다. 혀로 입술을 핥았는데 꺼칠꺼칠했다.

'눈을 뜨니 낯선 장소. 이래 봬도 난 웹소설로 단련된 몸이다. 당황하지 말자.'

"저, 저기요... 선생님?"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남자를 불렀다. 반응이 없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았었나 보다.

"저, 저기요! 선생님!"

남자가 천천히 돌아서서 날 보았다.

"깨어났으면 어서 나가보게. 상처는 대충 치료했으니, 괜찮겠지."

날 노려보는 눈빛이 너무 따가웠다. 그렇다고 그냥 예 하고 나갈 수는 없다.
일단 장르를 알아야 했다. 너무 뻔한 말이었지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어디죠? 제가 왜 여기 있는 건가요?"

 

가운을 입은 남자는 팔짱을 끼고 나를 이리저리 관찰하듯이 바라보았다.

 

"미친 겐가? 아니면 정신이 나간 건가?"

 

나는 어색하게 웃다가 자연스럽게 뒤통수로 손이 올라갔다. 머리를 감고 있는 뭔가가 느껴졌다.

바로 붕대라고 알 수 있었다.

 

"그, 그러니까. 제가 머리를 다친 것 같은데, 기, 기억 상실이 아닐까 하고요."

 

"하~~~, 아주 가지가지 하는 구만."

 

남자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손으로 이마를 쓸어넘겼다.

 

"내가 그런 사소한 것까지 알 것 같나. 작업 감독관을 찾아!!"

 

남자는 텐트 바깥쪽을 가리키며 독이 바짝 오른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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