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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작업 일지

2023년 08월 03일

by blacksnowbox 2023. 8. 3.

주식회사 탈라리아는 드론 사업을 하는 8년 차 벤처 기업이다.
본래 시설 점검이나 재해구조용 드론을 개발했던 모양이지만, 점차 사업 영역을 넓혀 지금은 원스톱 서비스 점검 솔루션이나 드론 도입 컨설팅, 일반 사용자 대상의 드론 강습을 하는 교육 사업 등의 고객 서비스도 제공한다.
입사 3년 차인 내가 소속된 곳은 남녀노소 드론 초보자들에게 실기 지도를 하는 ‘교육 사업부’다. 나는 신주쿠구에 있는 본사에서 도쿄 서부, 타치가와시에 있는 드론 실내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교외의 대형 창고를 개축한 스포츠 시설 내부에 있다. 우리 회사 소유 건물은 아니지만 관리 단체와 연간 사용 계약을 맺었다.
수강생들은 시작 30분 전에는 이미 모여 있었다. 총 4일간의 단기 강좌로 전반 2일은 이론 수업, 후반 2일은 실기지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은 내 담당이 아닌 탓에 그들과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시간이 되고 눈앞에 정렬한 사람들 앞에 서자 급격히 졸음이 몰려왔다. 방금 탄수화물을 대량 섭취한 결과 인슐린 과다분비가 수마를 불러온 모양이다. 가몬 선배의 불평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면 출석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기합으로 졸음을 떨치고 명부를 읽었다.

“자, 그러면 1번, 주식회사 코이와타 제작소, 우치야마 유타카 씨......”


네, 하고 배가 불룩한 폴로셔츠를 입은 중년 남자가 대답했다. 드론이라고 하면 젊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수강생은 연령의 폭이 넓다. 회사 업무로 사용한다, 퇴직 후의 취미, 부업 목적 등 수강 이유는 다양했다. 그만큼 드론에 이목이 쏠려있다는 증거다.

“2번, 주식회사 아르스 건설, 미우라 호시 씨. 3번, 개인사업자, 미나가와 사토루 씨.”

명부에 따르며 오늘 수강자는 6명. 대부분이 나보다 연상이고, 그중에 4명은 민간인, 2명은 소방관 제복을 입은 공무원이다. 소방 현장에서도 드론은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지, 최근에는 소방관의 참가도 늘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나와 비슷한 연령의 수강생이 있었다. 넉넉한 사이즈의 트레이닝복과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써 용모는 알기 어려웠지만, 가냘픈 골격으로 미뤄 보건대 아마도 여성? 연령의 폭이 넓기는 했지만, 성별에는 명확한 쏠림이 있고, 여성 수강생은 드물다.

“4번, 유한회사 알토 디자인, 니라사와 아오 씨...... 니라사와 아오?”

무심코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니라사와...... 아오? 동명이인? 아니 그런데, 이런 특이한 이름이 또 있을 리가.
명부를 보던 얼굴을 들었었더니,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여성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나를 수상쩍은 시선으로 보았지만, 잠시 뒤에 가느다란 눈매가 한껏 커졌다.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윽고 손가락 틈으로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 다카키 하루오?”

니라사와 아오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육상부의 높이뛰기 에이스로 말수가 적고 무뚝뚝했지만, 단정한 용모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지독한 노력가라는 이미지였고, 당시는 육상 트랙에서 일몰까지 연습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여러 번 실패하던 높이를 넘었을 때 작게 파이팅 포즈를 하던 모습이 스냅사진처럼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유달리 친했던 사이도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는 같은 반 친구로 평범하게 대했고,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나눴던 정도의 사이다. 저쪽도 기쁨보다는 당황한 표정이었으니, 나는 어, 오랜만이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넨 다음은 조용히 업무에 집중했다.
그래서 강의 종료 후,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와서 조금 놀랐다.

“오랜만이야.”


비행용 실내코트 곁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자, 갑자기 배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놀라면서도 평온한 척 돌어보았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뭐 그럭저럭. 다카키는?”


“나도, 뭐 그렇지.”

아오는 고등학교 때와 제법 인상이 달랐다. 옛날에는 쇼트커트였지만, 지금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다. 화장은 맨 얼굴에 가까웠지만, 립스틱과 눈썹 모양에서 제법 여성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정, 이렇게 친한 척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놀랐어. 누구랑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다카키였으니까.”


“나도. 니시자와, 드론에 관심이 있었던 거야?”


“관심보다는...... 좀, 일 하는데 필요해져서.”


“일? 그런데, 너네 회사는......”


“어. 디자인 회사.”

니시자와는 갑자기 둑이 터진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지방의 웹 제작회사에 일하는 것. 그 회사가 최근 영상 제작을 시작했다는 것. 자기도 어쩌다가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자비로 공중촬영용 드론을 사게 된 일. 처음에는 싫었지만, 공중촬영을 시작했더니 의외로 빠지게 되었던 일.
수다쟁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이렇게 자기 일을 내뱉는 타입이었던가.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사람을 바꾼다. 사회로 나와서 그녀 나름의 사교성을 갖추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이야. 사장이 자격을 따고 오라니까, 이 강좌에도 참가했어.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하니까, 이왕 하는 거 여행 기분으로 도쿄까지 가볼까 하는 마음에 여기를. 앗, 미안. 방금부터 나 혼자 떠들었네.”


“아니, 괜찮아.”

나는 드론의 배터리를 케이스에 담으면서 대답했다. 다만 수다스러움보다 더 놀랐던 것은 니시자와의 상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담배였다. 아직 그녀가 선수였을 무렵, 패스트푸드도 먹지 않는 성실한 여고생이었다.


“그나저나, 다카키는 왜 드론 회사에서 일하는 거야?”


니시자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답을 망설였다. 우리 집 사정은 어디까지 그녀에게 말했었지.


“어...... 글쎄. 역시, 드론은 시대의 최첨단이니까, 장래성도 있고 말이지......”


“다카키도 드론으로 영상도 찍어?”


“아니. 나는 주로 조사용.”


“조사용?”


“요즘 드론은 취미용 아니면 공중촬영용 드론뿐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개발되고 있거든. 건물 점검용 드론이라든가, 농약을 살포하는 농업용 드론도 있고. 내가 주로 담당하는 것은 건설이나 재난 현장을 조사하는 조사용 드론. ‘아리아드네’라고 몰라?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재해구조용 국산 드론인데......”


“흐음......”


이번에는 반응이 약했다. 역시 공중촬영 외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드론이지만,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일반의 인지도는 낮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재난구조라...... 역시 형 사고가 이유?”


케이스를 덮던 내 손이 멈췄다.


“내가, 말했던가?”


“응”


떠올랐다. 3년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에서 내가 딱 한 번 니시자와와 친밀하게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의 일이다. 밤에 해안선을 자전거로 달리던 나는 교복 차림으로 어두운 바다에 들어가려는 그녀의 모습이 수상해서 불러 세웠다.


“타카키, 그때 절대로 내가 자살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니시자와가 큭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달려와서, 솔직히 무서웠어. 도와주려고 온다기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니까.”


약간 낯을 붉혔다.


“어쩔 수 없었잖아. 그때 상황이.”


“그렇지. 뭐, 내 행동이 문제였지만......”

그 일이 있기 몇 개월 전에 니시자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선수 생명이 끊어질 정도의 큰 상처였다. 니시자와는 밝은 척했지만, 심정을 헤아린 나머지 반 친구들이 니시자와를 곪은 종기를 다루는 듯한 분위기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그때 다카키의 말은 전부 기억해.”


니시자와는 해맑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말하는 사람, 처음 봤다니까. 형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면, 거기가 한계야라는 말이야. 우리 코치보다 더 열의 있게 말하네, 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안해. 그거, 습관이야. 내가 아니라 형의 습관이었지만.”


“그렇구나. 그 말은 형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지. 기특하네. 사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나도 덕분에, 재활 좀 열심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었거든. 솔직히 육상에도 아직 미련이 있었고. 뭐, 결국 무리였지만.”


조금 놀랐다. 그 뒤로 깔끔하게 은퇴했고,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 내 말 따위, 틀림없이 흘려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티를 내지 않을 만큼, 역시 그녀는 심지가 굳은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갑자기 니시자와가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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