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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작업 일지

2023년 06월 29일

by blacksnowbox 2023. 6. 29.

“형.”


어두운 동굴 쪽으로 나는 소리쳤다.
여러 번 왔던 장소였다. 집에서 자전거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해안가에 있다. 미사일처럼 툭 튀어나온 곶 아래에 있는데, 평소에는 바다 속이지만, 간조일 때만 게임 속의 숨겨진 캐릭터처럼 얼굴을 내민다.
별명, ‘담력시험 동굴’. 위험한 탓에 어른들도 출입금지다. 학교에서도 여름 방학 전에 따끔하게 주의를 주지만, 동굴을 지나가면 절호의 낚시터가 있어서, 몰래 들어가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가 끝이 없다.


“형......”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형과 나는 항상 바쁜 홀어머니에게 신선한 해산물을 선물하려고 가끔 사람들 눈을 피해서 숨어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항상 동굴에 들어가는 것은 형 혼자였고, 나는 입구에서 망을 보는 역할이었다. 형의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바였다.

-우리 동생은 여전히 겁쟁이구나.

 

내가 오늘도 동굴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자, 형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언제까지 무서워할 거야? 그러다가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거라고.

 

-그전에 들어갈 거야. 그전에......

 

-그 전은 도대체 언제냐...... 됐다. 무리하고 생각하면 그게 한계니까.

 

그 말은 욕을 하는 것보다 몇 배는 타격이었다. 저런 감정을 ‘동정’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형을 원망하거나 나쁘게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왜냐하면 형은 착했고, 나와 달리 무엇이든 잘했고, 내게는 히어로였으니까. 좋아하고 존경하는 상대보다 부족하다고 자각하는 것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지금은 왜 당시 내가 그 동굴을 무서워했던 것인지조차 모른다. 아마도 형이 보여준 인터넷의 영상이 원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수중 동굴에서 익사한 스쿠버다이버의 영상이었는데,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해저의 어둠 속, 이윽고 다가올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무서웠다. 보고 나서는 여러 번 꿈에서 가위에 눌렸고, ‘어두운 동굴’은 나에게 공포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형도 같은 영상을 보았다는 말이다. 나 혼자 무서워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겁이 많다는 뜻일 뿐이다.


“형이 늦네......, 잡았을까......”


다시 차오르는 바다를 보고 나는 바위 위에서 채집용 어망을 쥐면서 중얼거렸다.
밀물은 빠르고, 일단 차오르기 시작하면 동굴 입구는 금세 물에 잠기고 만다. 그래서 위험하지만, 당시의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형이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버티는 일이 잦았고, 한번은 입구가 물에 잠길 무렵에 헤엄쳐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형은 내 눈에 상당히 어른이고, 형의 판단이 틀릴 리가 없고, 나 따위가 형의 행동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이때 형이 이미 물에 빠지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이변에 알아차린 것은 만조가 되고 입구의 상당이 높은 곳까지 파도가 밀려오고 나서다. 그때 처음으로 허겁지겁 어른을 부르러 갔지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나중에 친척에게 듣기로는 형이 바다에 떨어진 것은 입구를 불과 몇 미터 남겨둔 위치였다고 했다. 그 위치에 밥그릇 모양으로 파인 구멍이 있었는데, 벽면이 도자기처럼 매끄럽고 높아서 어른이라도 혼자 빠져나오기는 어렵다.
형은 수영을 잘했으니까, 바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어두운 바다를 떠다니면서 여러 번 내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제법 떨어진 바위 위에 있었으니까. 얕은 여울에 있는 바위에서 언제든 해변까지 걸어서 돌아갈 수 있는 절대 안전권에서 형의 모험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꿈을 꾼다. 만약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서 가까이에 있었다면. 어둠의 공포를 이겨내고 적어도 입구 근처에서 형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면.
운명은 어떤 식으로 바뀌었을까.
그랬다면 분명 나에게 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리하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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