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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작업 일지

2023년 6월 18일

by blacksnowbox 2023. 6. 18.

“마코토, 읽어보세요.”

캐시가 가리킨 것은 교실 입구에 걸려있던 황동 명판이었다. 길이 2미터 정도의 명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양생의료를 시행함에 있어서 모든 능력과 판단을 동원해, 환자의 이익이 되는 일을 생각하고, 위해를 가하거나 부정을 목적으로 치료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스러운 행위를 멀리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맹세를 계속 지키는 한, 나는 인생과 의술을 누릴 것이지만, 만약 이 맹세를 어긴다면 나는 그 반대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이른바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하는 글이었다.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그리스 신에게 올린 선언문이므로, 의대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라면 대부분 어딘가에 게시되어 있다.

“이게 뭔가 문제가 있나요.”

“이 선서 속에서 환자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고 있습니까?”

“그래도, 그건.”

“이 선서가 법의학 교실에 걸려 있는 것은 무척 상징적입니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벽을 넘어 살아있는 자도 죽은 자도 모두 같은 환자인 것입니다.”

캐시는 그것으로 기분이 풀렸는지, 마코토를 교실로 끌고 들어갔다.

“아무튼 교수 앞에서는 법의학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주의하세요.”

“저, 펜들턴 준교수님.”

“캐시라고 불러요. 모두 그렇게 부르니까.”

“캐시 선생님은, 그, 사체를 좋아하시는 건가요.”

“좋아합니다.”

캐시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사체에는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범죄 현상에 남은 어떤 증거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국의 검시관은 수사에 조언도 할 수 있습니다. 법의학이 범죄를 수사하는 데 무척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문득 캐시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당분간은 이 교실에 몸담게 되었다. 준교수의 프로필을 알아둔다고 손해는 아닐 것이다.

“캐시 선생님은 처음부터 법의학을 전공하신 건가요.”

“아니요, 콜롬비아 의대 시절은 임상의학을 목표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커리큘럼에서 법의학 강좌를 수강한 뒤에 흠뻑 빠지게 되었죠. 그리고 법의학을 전공한 뒤에는 더 깊이 빠졌습니다. 경쟁 상대가 거의 없어서 선구자가 된 듯한 기분도 만끽했었네요. 미국의 법학생 중에 검시의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불과 0.2%뿐입니다. 저한테는 좋은 일이지만, 참 신기하네요. 왜 이렇게 재미있는 분야를 전부 피하는 건지.”

아아, 바다 너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구나 하고 마코토는 미묘한 감회에 잠겼다. 캐시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체 전문 학문은 역시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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