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소설의 문장

[바라다]의 저주?

by blacksnowbox 2023. 8. 20.

요즘 보면서 느끼는 건데 다들 바라다에 미친 것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신종 저주인 겁니까?

 

바랐다, 바랐어, 바라요, 바라...

 

문법에 맞고 나발이고 안 어색한가요?

실제로 대화하면서 잘 되길 바라, 잘 되길 바라요라고 말하는 분?

혹시나 내가 너 이렇게 잘 되길 바랐잖아 같은 식으로 말하시는 분?
아, 실제로 카톡에서 '바라'라고 찍는 분은 봤던 것 같네요, 아무튼.

굳이 바라다를 쓸 필요가 없는 데도 그냥 쓰고, ~했으면 좋겠다고 담백하게 써도 되는 것도 굳이, 굳이 바라다를 쓰더군요.

 

모두가 바라다에 미치기 전에 바래와 바라가 우리말 문법 중에서도 특히 유명했었잖아요. 아마 그거에 여파이지 싶네요.

 

글을 말을 담는 그릇이죠. 어떤 글도 말보다 앞서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죠.

문자나 문법을 정해놓고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이 앞서고 그것을 정의하는 문자와 문법이 생겨난 거잖아요.

 

바라다의 유의어를 살펴보면요.

소원하다, 원하다, 염원하다, 기원하다, 열망하다, 청하다, 그리고 빌다, 기대하다도 있고요. 단어 선택의 중요한 포인트는 의미와 뉘앙스죠. 사전에서 바라다의 유의어를 각각 검색해서 예문을 비교/분석하면 뉘앙스(표현의 강도)에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정말 간절하게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염원이 담긴 말인지, 그냥 건성으로 툭 내뱉는 말인지 혹은 표현의 강도를 1-10으로 나눴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누군가를 초대할 때 꼭 참석해 달라는 건지 아니면 가능하면 와 달라는 말인지, 안 와도 크게 상관없다는 것인지. 강도에 차이가 있잖아요.

다른 표현들도 그렇지만 내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조건반사처럼 쓰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가장 많았던 유형이 기대한다가 더 적합한데 굳이 바라다로 통일하더군요.

그리고 다른 적합한 표현이 있는데, 바라다라는 단어에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어감이 낯선 표현을 쓰는 분도 많았고요.

보통 '믿을 수 없었어요', '믿기지 않았어요'라고 쓰던 것을 '진짜가 아니길 바랐어요'라고 쓰는 식이죠.

 

그러니까 바라다는 너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좋은 의도를 내비치는 표현이잖아요. 그런데 바라다는 그렇게 적극적인 뉘앙스는 아니잖아요. 안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닌데, 되면 좋고 안 되고 크게 상관은 없다는 느낌 아닌가요? 그래서 바랍니다~~ 같은 식(얼마나 잘 되나 두고 보자는 의미로)으로 비꼬는 말이 되기도 하죠.

 

-으로부터도 그렇지만, 습관처럼 쓰는 말은 문장이나 표현은 대단히 단조롭게 만듭니다. 바라다가 유의어가 많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바라다 말고는 거의 쓰지를 않아요. 글 쓰는 일이 직업인 분들에게는 정말 문제가 큽니다. 기존의 있는 단어만으로 얼마든지 풍성한 표현이 가능한데, 찾아보지 않으면 웹소설에서 간혹 보게 되는 괴상망측한 표현이 나오는 거예요. 일본 라이트노벨처럼 말이죠.

 

바라다는 표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하오체를 쓰지 않는 현대의 국어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실제로 하오체랑 잘 어울려요. 사극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표현과도 궁합이 좋고요.

바라오, 바라네, 바람세 등등.

 

길게 늘어놓기는 했지만, 바랐다도 계속 쓰다보면 익숙해지겠죠. 제 말은 바라다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예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바다라는 단어 하나로 다 통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실제로 '기다리다'가 들어가야 할 위치에 바라다를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으)로부터'와 '경우'가 있죠. 에서, 부터, -의, 필요한 어휘를 생략한 단편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고, 말끝마다 경우가 들어가는 문장도 있고요. 지금 신문사 사이트에서 아무 신문 기사든 들어가 보시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 수정 예(소설이나 드라마 속 인물의 대사라면 개성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만)

- 맛있어? / 맛있길 바라야죠 -> 맛있었으면 좋겠네요
- 성공하시길 바래요(바라요) -> '꼭 성공하세요'라고 간단하게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 ~~~는 성공하길 바라
(상황) A라는 인물이 B라는 인물에게 난 실패했지만 너는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말하는 상황. 일단 바라다는 원형이 말 끝에서 '바라'라고 쓰는 것 자체가 이상합니다. 현실에서 입밖으로 '바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 주변에 한 명이라도 보신 분? 위의 대사가 나오는 분위기가 우호적이었던 만큼, '그래 넌 꼭 성공해라/꼭 성공할 거야/성공했으면 좋겠다/(죽어도 바라다를 쓰고 싶다면)성공하길 바랄게
이렇게 쓸 수 있는 표현이 많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바랍니다'를 어디서 많이 듣죠? 백화점이나 관공서 같은 데서 많이 쓰잖아요. 이렇게 해달라는 요구/요청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요즘 시대에는 사적으로 친한 사이에 쓰는 말은 아니라는 거죠. 90년대까지만 해도 드라마에서 사이가 나쁜 인물들이 '넌 알마나 잘 되나 두고 볼께'라는 뜻으로 '잘 되길 바라겠습니다/잘 되기 바랍니다' 같은 식의 비꼬는 말투로 많이 쓰였거든요. 썼는데 어색하잖아요? 그거 문제 있는 겁니다.

 

반응형

'웹소설의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  (0) 2023.09.21
읽기 괴로운 글  (0) 2023.08.20
아버지와 아버님의 차이  (0) 2023.04.25
의뭉  (0) 2022.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