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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정보/소설번역(미리보기)

断罪のネバーモア(단죄의 네버 모어)

by blacksnowbox 2022. 12. 28.

| 도서 정보 : https://blacksnowbox.tistory.com/2521

 

断罪のネバーモア(단죄의 네버 모어)

이 소설도 표지가 눈에 들어와서 선택했습니다. 소개를 보니까 전형적인 일본 경찰+미스터리 소설이고, 반전이 대단하다는 말이 있네요. 문제는 그놈에 후반 반전만 노리고, 판에 박힌 전개와

blacksnowbox.tistory.com

< 미리보기 >

프롤로그

‘안녕하십니까
두 분의 혼약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제반 사정으로 오랫동안 소식을 파악하지 못해, 축하의 마음을 너무 늦게 전해드려 면목없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약혼자분인 우라가미 아야네 님의 사진을 동봉합니다. 왼쪽 입가에 점이 사랑스러운 분인 듯합니다. 자화자찬이오나, 분명 ----님의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직접 전해드려야 마땅하오나, 다망한 와중에 이런 식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거듭 사죄드립니다.
근일 중으로 축하 선물을 준비하겠습니다. 대리인을 통해 전하오니, 부디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으로 축하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언제까지나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20xx년 xx월 xx일

Nevermore
-–-님’

“후추의 C 피의자는 최초 A와 B 두 건에 대한 알리바이가 확인되었습니다.
9월 28일부터 10월 25일까지 거의 1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 각국의 고객과 만났습니다. 여권은 물론 현지의 고객에게도 확인했습니다. 일시 귀국한 흔적은 없었습니다.
야시오의 C 및 D에 관해서는 지금 조사 중입니다만......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의자의 범행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수사관이 보고를 마치고 착석한다. 넓은 강당의 여기저기에서 낙담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모방범 확정인가”, “카라스의 예상이 맞았구나”, “그러면 상처는 어디서-”, “언론에는 밝히지 않았을 텐데”, “국내 사건은 인터넷으로 보았다고 해도......”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사본부의 상석에서 두 번의 박수와 함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백여 명의 수사관들이 일제히 침묵하고, 아직 30대가 될까 말까인 젊은 과장을 보좌하는 카라스마 마스미를 바라보았다.

2015년 10월 18일. ‘삼도현 연속 살인사건’의 합동 수사본부.
이바라기, 도쿄, 사이타마 각 현에서 복수의 여성이 목에 알파벳을 새겨져 살해되었다는 소설과 흡사한 엽기살인이 시작되고, 이미 1개월 남짓이 지났다.
A와 B의 사건이 동일범의 소생으로 판명되기까지 2주. 후추에서 C 사건이 발생한 것이 10월 초순. 다음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범인을 체포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모든 수사관이 초조해지기 직전인 11월 중반, 야시오에서 다시 C의 사건이 발생했다.
혼란에 빠진 수사본부의 고삐를 조이듯이 이틀 뒤에 치치부에서 D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각인에 대해서 언론에 밝히지 않은 이상, 모든 사건은 동일범일 가능성이 높다. 범인은 왜 사체에 알파벳을 새긴 것인가. C가 두 번 이어진 것은 왜인가. 범행은 무차별인지, 아니면 범임과 각 피해자 사이에 접점이 존재하는지. 범인은 정말 한 사람인지.
하마터면 수사의 방향을 잃기 직전에, 두 건의 C에 주력하시죠라고 제안한 것이 과장 보좌인 카라스마였다.

“규칙성이 없는 부분에는 반드시 무언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은 그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라스마의 방침에 따라 분산되어 있던 수사 정보를 집중시킨 결과, 후추의 C 사건 피의자가 어제 체포되었다. 그리고 지금 모방범이라고 확정 지었다.
합동 수사본부가 설립된 초기에는 카라스마에 대해 ‘임시직 따까리가 건방지게’라는 쌀쌀맞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탈선 직전의 수사가 그런대로 궤도가 수정된 지금은 반대로, 베테랑 수사관의 감탄과 경외의 시선이 쏟아졌다.
주목의 인물은 강경한 태도의 수사관들 앞에서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빼어 용모의 청년은 방금 보고를 했던 수사관에게 질문을 했다.

“알파벳 각인에 대해서는 후추의 피의자는 뭐라고 진술했습니까.”
“귀국 후의 술자리에서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유락쵸역 근처의 이자카야였다고 하는데, 가게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고,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유락쵸역은 도쿄 경시청 본부 청사에서 도보로 20분 거리다.
수사관 중에 누가 술자리에서 입을 잘못 놀린 건가?

“알겠습니다. 각인에 대한 정보의 출처는 일단 미뤄두기로 합시다.”

카라스마가 강당에 번지는 불신의 분위기를 억눌렀다.

“후추의 살인은 별건으로 판명되었으니, 현시점의 연쇄살인 피해자는 4명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치히로, 프로젝트를.”

작은 목소리로 지시를 내린다. 치히로라고 불린 덩치 큰 여성 경찰관이 ‘아, 네에’라며 긴장한 듯이 프로젝트의 마개를 열고, 노트북으로 손을 움직였다. 잠시 뒤에 심플한 표가 강당 정면의 스크린을 채웠다.

사체 발견일    현장     각인     사후 경과 기간
10월 12일     쓰쿠바   A        3일~
10월 12일     오우메   B        4일~
11월 14일     야시오   C        4~6시간
11월 16일     치치부   D        1일~

“피해자 4명의 사체 상황은 이 표와 같습니다. 피해자는 십 대에서 사십 대.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전원과 면식이 있는 인물이 몇 명이 드러났지만, 전원 어떤 사건으로 알리바이가 입증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하면, 우선 야시오의 사건만 사망 추정 시각이 빨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C도 모방범이라는 건가요.”

장년의 수사관이 지적하자, 카라스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인인 자창의 형태가 다른 세 건과 동일한 점을 보면, 별건인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오히려 치치부의 사건과 관련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최초의 세 건은 사체 발견 일자의 간격이 1주일에서 1개월에 가깝게 비지만, 세 번째인 야시오와 네 번째인 치치부는 불과 2일입니다.
게다가 치치부는 사후 경과 기간이 사체 발견 일자에서 ‘1일 이상’. 호수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지만, 각인의 순서를 무시하면 어느 쪽 피해자가 먼저 살해되었는지 확정할 수 있는 물증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치치부의 피해자가 야시오의 피해자 다음에 살해되었다고 생각할 이유도.”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금 전의 소란과는 비교되지 않을 음량이었다.

사체에 새겨진 알파벳은 살해 순서를 숨기려는 의도였구나!?

카라스마는 입을 다물고 수사관들의 소란이 저절로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1분 가까이 필요했다.

“이후의 수사 방침을 전달하겠습니다. 치치부 사건의 알라바이는 무시하고, 피의자를 다시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식은 치치부 사체의 재검시를 부탁드립니다. 의견이나 질문은 있습니까?

2015년 12월 19일.
도내에 거주하는 회사원 모토무라 신이 살인 용의로 체포된 것은 수사회의가 있고 약 1개월 뒤였다.
흉기인 서바이벌 나이프는 피의자가 사는 아파트 뒤뜰에 묻혀 있었다.
 
 

제1화 연회가 끝나고



핸드폰, 확인.
경찰수첩, 확인.
스마트 글래스, 확인.
몸가짐도...... 아마, 문제없음.

‘출입금지’를 나타내는 노란색 테이프 밑을 지나서 녹슨 계단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통로의 손잡이를 따라 걸으면서 ‘입주자 모집 중’이라고 붙여 놓은 종이 앞을 지나, 문 정면에 서서 야부우치 유이호는 숄더백에서 스마트 글래스를 꺼냈다.
스마트 글래스라고 해도 외견은 버튼이 달린 고글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수사기관에 보급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일본에서는 겨우 시범운영이 막 시작되었다. 유이호는 숨을 가다듬고, 스마트 글래스를 착용했다.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 있는 녹화버튼을 눌렀다.

“2022년 5월 16일, 11시 15분. 나카죠, 야부우치반, 검증을 시작합니다.”

무사히 버벅거리지 않고 말했다. 이후에 계속 보존되는 점을 생각하면 의연히 말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방심한 것이 문제였을까.
옆에 있던 파트너를 올려다본 직후. 유이호는 꾸밈없는 목소리로 소리치고 말았다.

“잠깐만요, 나카죠 선배?”

유이호의 파트너이자 선배인 나카죠 류지는 스마트 글래스도 쓰지 않고 정장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205’라고 쓰인 문 옆의 표찰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뭐하고 계세요. 녹화, 시작되고 있다고요.”
“어, 그러냐.”

류지는 유이호 쪽으로 돌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스마트 글래스를 썼다.

“나카죠, 야부우치반 검증을.”
“버튼 안 눌렀어요.”
“넌 무슨 시누이냐.”

류지가 찡그린 표정으로 손끝으로 버튼을 눌렀다.

“나카죠, 야부우치반 검증을 시작한다...... 뭐하냐, 야부우치. 빨리 대답해라.”
“네, 알겠습니다.”

불과 십여 초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다시 보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어질 것이 분명한 대화를 유이호의 스마트 글래스가 또렷이 녹화했다.
마르고 긴 체형의 나카죠 류지와 처음 대면했을 때의 이미지는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유이호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크고,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나른한 듯한 가느다란 두 눈 아래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있었다. 정장은 목 뒤쪽 옷깃이 흐트러져 있었고, 넥타이는 더워서 대충 둘렀다는 티를 내듯이 느슨했다.
이 사람이 진짜 경보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왜 이런 사람과 콤비가 된 것인지. 아니지, 이유는 잘 알고 있다. 합당한 결과다.

유이호는 속으로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 흰색 장갑을 낀 손을 문 손잡이로 뻗었다.
 
 
츠쿠바 시내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대학생 타카하시 호나미가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은 오늘 아침, 5월 16일 7시 30분경이었다.
첫 번째 발견자는 피해자의 친구. SNS, 전화로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 피해자의 집을 찾았지만,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문 손잡이를 돌려보았는데 잠겨있지 않았다.
큰일이 났다는 예감에 문을 열었더니 피웅덩이 속에 쓰러져있는 피해자를 발견했다고 한다.
타살이었다.
감식의 소견으로는 흉기는 부엌칼.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각은 사체 발견보다 반나절 전인 5월 15일 밤 이전이다.

현관에 들어서자 오픈 키친이 붙어 있는 3평 정도의 단칸방이었다.
남쪽으로는 1평 반 정도의 작은 방. 모두 바닥은 플로링이다. 공간을 나누는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3평짜리 방과 하나로 이어진 상태였다.
2층 가장자리에 위치한 만큼 서쪽 벽에 창문이 있고, 하얀색 얇은 레이스 커튼이 쳐져 있었다. 서쪽 벽 끝에 1평 반 방 경계 부근에는 냉장고와 싱크대, 가스버너. 부엌 쪽으로는 복도라고 부르기에는 짧은 직사각형 공간이 있고, 동쪽에는 세면대, 북쪽은 화장실로 이어진다.
구조는 유이호가 사는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흔하디 흔한 1LDK다.
그러나 지금 3평방의 바닥에는 검붉은 피웅덩이가 있고, 흰색 테이프가 사람 모양으로 붙어 있다. 사체는 사법 해부를 받을 예정이지만, 생활공간의 흔적은 교통사고 현장과 전혀 다른 생생함이 있었다.
게다가.

“뭐야, 이건.”

류지는 어이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타카하시 호나미의 거주 공간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덕후의 방’이었다.
3평 방의 동쪽 벽, 서쪽 창문 맞은편에 A2크기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애니메이션 느낌의 미려한 화풍으로 5명의 미소년이 그려져 있었다. 학원물 작품인 듯, 전원이 교복 차림이었다.
포스터 네 귀퉁이는 자석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오른쪽 아래의 자석을 밀어내고 들춰보니, 원형 압정이 벽에 꽂혀 있었다.
철판 대신에 압정을 이용해 포스터에 구멍을 뚫지 않고 자석으로 고정하는 방법의 한 가지다.
원형자석은 본 적이 있었다. 전국에 퍼져 있는 천원샵에서 8개 한 세트로 팔리는 제품이다. 유이호도 근무표를 냉장고 옆면에 붙이는 데 사용한다. 크기나 자리는 차지하는 형태는 싫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포스터는 3평 방뿐 아니라 짧은 복도 벽에도 한 장 붙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네 귀퉁이가 원형자석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같은 그림체, 똑같이 5명의 캐릭터가 구도만 달랐다. 피해자가 좋아하는 작품인 모양이다.
방 주인의 취향을 가장 진하게 드러내는 것이 남쪽 1평 반 짜리 방이었다.
암막커튼이 쳐진 남쪽 창문에 가까운 서쪽 벽 끝에 색 유리가 들어간 문이 달린 책장이 있었다. 문을 여니 만화와 소설, A4크기의 얇은 책이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책장 앞과 책등 사이의 좁은 공간에 애니메이션 등장인물로 보이는 남성 캐릭터의 피규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책장 반대편, 동쪽 서랍장을 열었다. 상단에는 이불과 의류 케이스, 하단에는 중간 크기의 박스가 2개 들어 있었다. 모두 박스 테이프가 붙어 있지 않았다.
앞쪽 박스를 열었다. 만화책과 CD케이스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안쪽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검은색 바탕에 ‘3rd LIVE TOUR 2018’라는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토트백이다. 로고 아래에는 투어 일정으로 보이는 ‘01/20~04/01’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애니메이션 관계의 주년 라이브 투어 굿즈인 듯하다.
토트백 밑에는 같은 작품의 굿즈를 증명하듯이 ‘2nd LIVE 2017 02/11~12’라는 로고가 찍힌 가방과 캐릭터가 프린트된 티셔츠, 경광봉과 아주 흡사한 짧은 플라스틱 봉이 들어 있었다. 손잡이 부분의 스위치를 누르자, 위쪽 절반이 빨간색으로 반짝였다. 응원봉이라고 불리는 물건일 것이다.

유이호는 여성 대상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작품과 인기 만화의 남성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취미는 저마다 다양하다. 수사관은 어디까지나 사건 해결의 단서라는 관점만으로 유류품을 본다. 형사과 과장에게도 마음가짐으로 들었던 이야기다.
하지만 류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시선으로 포스터를 보았다.
“설마 이쪽에도 붙어 있는 건 아니겠지.”라며 중얼거린 직후에 화장실 문틀에 강하게 머리를 부딪쳤다.

“괜찮으세요...... 조심 좀 하세요.”
“너무 낮잖아. 문틀이.”

류지가 짜증을 냈다.

“넌 검증이나 해. 끈질기게 부탁해서 일부러 따라와 줬잖아. 만화에 정신 팔고 있지 말고 빨리빨리 끝내.”

무척 심한 독설이다. 반론을 하려다가 급하게 말을 삼켰다. 스마트 글래스는 음성도 녹음된다. 공적인 기록 영상을 말싸움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말싸움을 할 여유가 있다면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었다.
1평 반 짜리 방을 나와, 세면대, 욕실,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포스터를 포함해 이렇다 할 발견은 없었다.
3평 방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퍼져있는 피웅덩이, 정확히는 그 한 편을 다시 보았다.
서쪽 가장자리 일부가 거의 일직선으로 닦은 형태였다.
범인이 무심코 만졌다가 허겁지겁 닦은 듯했다. 첫 보고에 따르면 피가 묻은 타월이 조금 떨어진 위치에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피 묻은 타월도, 흉기인 부엌칼과 함께 감식 중이다. 바닥에 남은 것은 부엌과 피웅덩이 중간에 붙어 있는 흰색 테이프의 테두리뿐이다.
부엌 벽에 타월 걸이가 붙어 있었다. 흡착으로 고정되는 타입이다. 총 3개의 봉이 부채꼴로 펼쳐져 있었다. 오른쪽 봉에는 행주, 중앙의 봉에는 복숭아색 무늬의 얇은 천이 걸려 있었다. 나머지 하나인 왼쪽 봉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범인은 부엌에서 피를 씻고 손을 닦은 뒤에, 그 타월로 피웅덩이의 지문을 닦아낸 것이라고 보면 되는 걸까요.”
“중앙에 분홍색 천은 뭐냐.”
“식기용 아닐까요. 왼쪽 봉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범인이 사용한 타월은 본래 저기에 저기에 있던 손을 닦는 타월이 아니었을까요. 자취를 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는 누구라도 알 텐데.”

싱크대 아래의 문을 열었다. 부엌칼 꽂이가 문 안쪽에 붙어 있었다. 구멍은 4개. 끝에서 두 번째 구멍에 작은 부엌칼이 하나 꽂혀 있었다.
남은 구멍은 비어 있었다. 가장 앞쪽에 꺼내기 가장 쉬운 구멍에는 부엌칼이 없었다. 작은 부엌은 바로 옆이었다.
싱크대 가장자리에 플라스틱 재질의 거름망이 있고, 접시와 밥그릇, 컵이 들어 있었다. 완전히 마른 상태였다. 역시 부엌칼은 보이지 않았다.
감식에 넘긴 흉기인 부엌칼과 꽂이에 있는 작은 부엌칼. 제3의 부엌칼이 없다는 사실은 흉기인 부엌칼이 본래 가장 앞쪽에 꽂혀있었다고 봐도 되지 싶었다. 식기와 함께 거름망이 놓여 있는 것을 범인이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피해자의 지문이 나오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감식의 소견대로 흉기인 부엌칼은 피해자의 방에 있었던 것. 피웅덩이는 일부를 닦았을 뿐, 그 외 눈에 띄는 흔적은 없다. 다른 장소에서 찔렸을 가능성은 한없이 희박해 보인다.
범인은 피해자의 방에 들어와 부엌칼로 피해자를 찔렀다.
충동적인 범행이었던 걸까. 본래 살의를 품고 찾아왔다가 부엌칼을 보고 순간적으로 뽑았던 걸까. 지금은 뭐라고 단정할 수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하던 타입은 아니었나 보군.”

어느새 류지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3평 방의 동쪽 벽 포스터 옆에 놓인 심플한 디자인의 책상. 책상의 전등은 스마트폰 충전기, 압정이 들어 있는 작은 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계속해서 자료를 살펴보니, 외에도 노트북이 놓여있었던 모양이다. 책상다리 쪽에 남아 있던 피해자의 가방은 증거품으로 회수된 상태다.
책상 주위의 다른 유류품은 북엔드에 사이에 있던 몇 권의 두꺼운 학술서뿐. 1평 반짜리 방의 장서와 비교하면, 확실히 공부에 관련된 물품은 적어 보였다. 하지만.

“글쎄요. 팬데믹 기간이라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했을 테고, 강의 자료나 리포트는 제가 학생일 때도 파일로 주고받는 것이 당연했고요...... 대학에도 바로 합격했을 정도니까, 적어도 일반적인 기준으로 말하면, 근면했던 편이지 않았을까요.”

피해자의 약력을 떠올려 보았다. 타카하시 호나미, 2001년 12월 26일생. 츠쿠바 대학 사회, 국제학군 3학년.
불과 2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수사에 개인의 감상은 금물이다.”

유이호의 표정을 직접 본 것처럼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유이호는 짧게 내뱉고 스마트 글래스 너머로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바퀴가 달린 의자가 책상에 깔끔하게 들어가 있었다. 동쪽 벽 안쪽에는 커다란 비닐봉지가 든 박스. 택배업자의 로고가 찍혀 있었다. 이사에 사용한 것을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활용한 것이다.
달리 특별한 점은 없었다. TV는 물론이고 무선 라우터나 랜선도 없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는 스마트폰이나 무료 연결 스폿을 사용했던 모양이다.

“면식범의 범행, 일까요.”

책상 위의 물품을 포함해 몸싸움을 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글쎄.”라며 류지가 대답했다.

“부재 중일 때 침입한 빈집털이가 때마침 귀가한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습격했을 수도 있겠지.”
“이곳에 빈집털이, 말인가요?”


유이호가 노르스름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타카하시 호나미의 주거는 30년 된 저렴한 아파트였다.
유이호의 방과 비교하면 벽, 기둥, 바닥의 여기저기에 상처투성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확실히 오래된 건물이었다. 방금 들여다본 화장실도, 세면대와 욕조에 변색된 곳이 눈에 띄었다.
건물 주위도, 계단과 통로의 손잡이는 온통 녹이 슬어 있었다. 당연히 방범 카메라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여대생이 원해서 살고 싶어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집세가 저렴하다는 이유로만 선택했을 것이다.
아파트 주인에 따르면 총 10개의 방이 대부분 빈 방인 모양이다. 피해자를 제외한 주민은 103호실의 80세 가까운 남성뿐이다. 초동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관은 증언다운 증언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집주인 아파트가 아니라 시가지에 가까운 단독주택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재건축할 자금도 없어서, 이제 끝이라며 낙담했다고 들었다.


인근에 다른 주민이 거의 없고, 집주인도 항시 부재. 류지의 말대로 빈집털이가 침입하기 쉬운 환경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빈집털이가 이곳에 값나가는 물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창문에 불을 켜두었으면 사림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


류지는 서쪽 창문의 커튼을 잡아 올렸다.
아파트 부지를 구분하는 울타리 너머는 넓은 밭. 밭 뒤로는 우거진 숲. 민가와 고층빌딩은 보이지 않는다. 시가지에 가까운 지역이지만, 옆길로 들어서면 이런 농지가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이 있으면 뭐든 돈이 될 물건이 있지. 요즘은 가난뱅이 대학생이라도 스마트폰 정도는 가지고 있잖아. 내다 팔면 그런대로 돈이 되거든.
빈집털이에게 중요한 것은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들키지 않고 들락거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야. 여기는 출입하는 주민도 적지. 몰래 숨어들기에는 안성맞춤이야.”


방금까지 의욕이 없었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말투였다. 제대로 수사해볼 생각인 걸까.


무엇보다 주위에 주민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문 쪽, 주차장, 길, 수풀을 사이에 두고 마찬가지로 2층 높이의 깔끔한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거리적으로나 시각적으로도 사건 현장에서는 멀다. 연구학원도시의 숙명인지, 주민도 빈번하게 바뀐다. 목격 증언을 얻는 것은 힘들 듯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미리보기 분량의 2/3정도를 번역했습니다. 수사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새로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내용의 소설은 너무 많다는 게 문제죠. 국내에 들어오는 일본 소설은 수상작 혹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이거든요. 이 소설도 독특하거나 수사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거나 하는 장점은 딱히 없네요. 웹소설, 드라마, 영화, OTT 오리지널 콘텐츠 등등 수사물은 거의 포화되다 못해 송곳 꽂을 틈도 없을 정도잖아요. 초반의 흡입력과 중후반의 반전, 깔끔한 결말이라는 뻔하다고 할 수 있는 성공 공식인데, 이 작품은 딱히 뭔가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서 무난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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