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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정보/소설번역(미리보기)

나키메사마(ナキメサマ) - 작가 사사키 유시로의 괴이담 수집 시리즈

by blacksnowbox 2023. 1. 13.

| 작품 소개 : https://blacksnowbox.tistory.com/2514

 

나키메사마(ナキメサマ) - 작가 사사키 유시로의 괴이담 수집 시리즈

이게 40회 요코미즈 세이시 미스터리&호러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우명 작가 누가 추천했다는 기사를 얼핏 봤는데 생각이 안 나네요. 올해 9월에 4권까지 나왔습니다. 시리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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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구성을 상당히 치밀하게 짜는 타입 같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인 호러 작가에게 지명을 받은 편집자가 원고를 읽으면서 원고 내용을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호러가 초반에 독자의 관심을 잡아두기가 쉽지 않은데, 작품 주인공의 실제 경험담이라거나 특정 편집자를 지명했다는 식으로 계속해서 복선을 깔아 둡니다. 중반부터 복선들이 이어지면서 초반에 느꼈던 의문이 풀리는 형태일 듯합니다. 스토리 위주의 호러 게임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 미리보기 > 

전일담
두 번째 커피는 완전히 식은 상태였다.
나는 변변한 단맛도 느껴지지 않는 커피로 입술을 적시며 물었다.

"그래서 다음 취재는 어디로 가실 예정이신가요?"

건너편에 앉은 남자는 어쩐지 연기하는 듯한 과장된 동작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한쪽 눈썹을 실룩였다.

"도토 지역에 유명한 호수가 있는데. 거기 캠핑장 가까이에 하룻밤 사이에 주민이 전멸한 동네가 있나 보더라고."
"주민이 하룻밤에요...... 어쩐지 무시무시한 장소네요."

인상을 찡그린 나에게 그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정말 그렇지 쿠제군. 로케이션으로는 최고지만 말이야. 문제는 그 지역에 떠도는 괴이담이 내게 납득할 만한 내용일까 하는 점이지."
"나나키 작가님이라면, 분명 무시무시한 괴이담을 찾으실 겁니다."

그럼 좋겠지만, 하고 나나키 유시로는 자조하듯이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그는 내가 소속된 출판사에서 십여 편의 소설을 출간한 호러 작가이며, 나는 담당 편집자다.
내가 그를 담당하게 된 것은 올봄에 지금의 부서로 이동한 뒤부터다. 사실 아직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전까지 나는 문예지 부서에서 잡지 편집을 했었다. 본래 책을 만들고 싶어서 입사한 나에게 지금의 편집부로 이동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버틴 6년. 드디어 하고 싶은 일에 온 힘으로 다해 뛰어들 기회를 맞이해, 기세 등등했던 나는 우선 담당인 나나키 유시로의 출간작을 전부 독파했다. 하지만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아주 약간 맥이 빠지고 말았다.

나나키 유시로의 소설은 매번 다양한 괴담이 등장하는 스탠더드한, 나쁘게 말하면 낡아빠진 호러 소설. 홋카이도 각지로 직접 찾아가서 괴담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처참한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이었다. 특징은 작중에도 나나키 유시로에 해당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주요 인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괴이의 기원과 형성, 성질을 밝혀서 생존 수단을 강구하는 위치다. 엔터테인먼트로도 나쁘지 않고, 나름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직 일부의 코어팬을 제외하면 크게 반응이 있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이 초판으로 끝이고, 일반적인 지명도도 낮다. 여행지의 서점을 찾아가면 그의 작품이 없는 일도 드물지 않고, 그럴 때 나나키는 어디를 가든 항상 휴대하는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서 억지로 서점에 남겨둔다고 한다. 그런 일 때문에 편집부 앞으로 클레임이 왔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 나나키 유시로의 작품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은 ‘자신의 체험을 베이스로 한 픽션’이라는 설정에 대한 수상함이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괴이는 전부 황당무괴하며, 단순한 유령이나 원령 따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괴물뿐이다. 독자는 그런 것이 당연히 존재하는 세계관에 리얼리티는 느낄 수 없고, 실제 체험이라고 말해도 무작정 믿을 리가 없다. 결국 허술함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출발은 언제인가요?”
“아, 2시간 뒤에 항공편이야. 언제 돌아오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군요. 그런데 작가님, 신작 원고는 언제쯤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요?”

은근슬쩍 떠보니, 나나키가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면서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취재를 해봐야 하니까, 바로 대답하기는 어렵지.”
“출판사 입장에서는 가을쯤 출판을 목표로 스케줄을 진행했으면 합니다만.......”

힐끔 표정을 살피니, 사사키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평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데, 이런 반응은 낯설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사사키의 작품은 열광적인 일부의 팬들은 호평이지만, 대중성은 부족하다. 따라서 지명도도 뻔하다. 작가 자신도 이해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는 모양이고, 만난 상대가 자신을 모르면 티가 날 정도로 기분 나빠하며, 억지로 자신의 책을 떠넘기려고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민폐일 뿐이지만, 자기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을 갖고 있다는 점만은 훌륭한 자세다.
그러나 그에게는 출간 간격이 대단히 불안정하다는 결점이 있었다. 괴이담을 찾아서 각지를 떠도는 습성 때문인지, 일절 연락이 되지 않는 시기가 많다고 들었다. 전임자가 급하게 일을 맡기려고 연락을 해도 전혀 연결되지 않다가 잊어버렸을 무렵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핸드폰이 부서졌어. 참 미안하게 됐네’ 같은 태평한 소리를 할 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마감을 넘기는 일도 잦고, 필생의 작업으로 여기는 괴이담 수집의 취재 여행에 일 년의 절반 이상을 쓰는 탓에 간단한 미팅도 잡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무척 다루기 힘든 작가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신작을 기다려 주는 독자가 있고, 편집부에서도 사시키 유시로는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고 호언하는 편집자도 드물게 있다. 이렇게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통하는 사람에게는 통하는’ 소설을 쓰는 사사키의 매력 덕분일 것이다.
나는 식은 커피를 들이켜고, 다시 한번 속으로 탄식했다.

“후속편이 아니라, 과거에 썼던 거라면 바로 보여줄 수 있는데.”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사사키가 말했다.

“어떤 이야기입니까?”
“뭉개진 얼굴의 여자’ 이야기야.”

나는 툭 내뱉는 말을 머릿속에서 되새기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뭉개진 얼굴...... 혹시 작가님의 체험담입니까?”
사사키는 곧바로  테이블 너머에서 상체를 내밀고 지긋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하얀 피부, 수상한 빛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 지근거리에서 한기가 느껴질 만큼 단정한 얼굴로 쏘아보는 시선에 나는 저절로 물러서며 움찔했다.
“물론이지. 게다가 계속 아껴두었던 거지. 내가 처음 체험한 괴이 사건이니까.”
“그거 참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발표하지 않으셨던 건가요?”
반신반의였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으음, 사실은 말이야, 데뷔 전에 쓴 상태로 방치했던 원고라서 그래.”
어쩐지 말을 아끼는 사사키의 태도에 희미한 의문이 생겼지만, 이미 완성된 원고라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테이블로 몸을 붙이며 말하자, 사시키는 자세를 바로잡고 우아한 동작으로 마시던 홍차를 한 모금 넘긴 뒤에 다시 나를 응시했다.
평가하는 듯한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을 때, 문득 아무런 맥락도 없이 전임자에게 들었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났다.
‘사시키 작가님이 새 편집자는 반드시 구제 코토미로 부탁하고 싶으시다네. 정말 편집자에게는 과분한 일 아닌가’
희희낙락한 말투로 태평스럽게 말하면서, 전임자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이동이 정해지고 담당이 변경되었다고 전했을 때, 사사키 작가가 그렇게 부탁해왔다고 했다. 나는 전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사사키는 이전 어느 문예상 축하연에 참가했을 때, 내 모습을 딱 한번 목격했던 모양인지, 그런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나는 사시키와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없고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즉 면식조차 없는 나를 어떻게 지명한 것인지. 이유를 알 길이 없다.
경험도, 실적도 전임자와 비교도 되지 않고, 나 외에 우수한 편집자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키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 따위를 지명했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에 영광스럽기보다 오히려 불신감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맡은 이상 할 수밖에 없다. 업무를 제대로 수행해 나가면 언젠가 사시키의 본심도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부탁드립니다. 그 원고 저에게도 보여주십시오”
거듭 부탁하면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사시키는 잠시 묵상에 잠겼다. 먼저 이야기를 꺼냈는데도 꽤나 미적지근한 태도였다.
“알았어. 나중에 데이터를 보내도록 하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서두르지 않는 편이 좋아.”
그렇게 말한 사사키의 표정에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어두운 감정이 아른거렸다.
“그건 어떤 의미입니까?”
물어보는 말에 저절로 긴장이 스몄다.
“지금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어. 아무튼  돌아와서 원고 데이터를 보내지. 이번 목적지는 그렇게 벽지도 아니니까, 취재할 동안에도 연락이 가능할 거야.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지.”
그렇게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사시키는 시계를 확인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상세히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서두르는 모습에 억지로 붙잡아둘 수 없어서 마지못해 포기하기로 했다. 계산을 마치고 가계 앞에서 사시키와 헤어졌다. 부산스럽게 멀어져 가는 등을 지켜본 뒤에 나는 가장 가까운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내일 4일간 휴가를 얻어 본가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어머니와 만나는 것은 2년 만이다. 건강히 잘 계시는 걸까.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흔적이 느껴지는 얼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첫날

“저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인사를 하니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거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머나, 고토미니? 상당히 빨리 왔네.”
“때마침 시간이 맞는 버스가 있었으니까.”

짐을 내리고 거실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엄마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터벅터벅 슬리퍼 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아아- 피곤하다. 엄마, 나 차 좀 줘요.”
“뭐야, 오자마자. 짐, 이쪽으로 옮겨 놔.”

나는 가방을 들고 거실로 향하는 엄마의 어깨너머를 보고 나서 힘들게 일어섰다. 역에서 버스를 타면 수십 분 정도의 거리지만, 오랜만에 본가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고, 지친 몸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익숙한 거실로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열린 창문을 지나온 기분 좋은 바람은 땀에 젖은 피부를 식혀주는 듯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의 TV란에는 밤에 방송되는 드라마 부분이 빨간색 매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작년 엄마는 친구와 여행지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2개월 만에 완치되었지만, 그 사이에 운동 부족이 겹쳐서 오랫동안 일하던 슈퍼의 파트타임을 그만두고 말았다. 이전처럼 일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말했지만, 이미 60대 후반인 엄마에게 하루 6시간 계속 서 있는 파트타임은 애초에 한계였을 것이다.
파트타임 수입이 없어도 엄마 혼자 생활하는 것이 곤란한 내색은 없었으므로, 그 점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 내내 TV를 보면서 지낸다면, 그건 그것대로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자주 찾아올 수도 없었던 탓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전화를 하려고 생각하지만, 바쁜 일상에 얽매여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오빠는 잘 지내?”
“늘 같지. 요전에 막내 책가방 사러 같이 갔다가 백화점을 세 군데나 돌았다니까. 전부 비슷한 디자인 같았는데 말이지.”
“료카가 벌써 초등학교? 우와-. 빠르다.”

오빠인 토오루는 후라노시의 시청에서 근무하면서 차로 1시간 정도면 이곳을 올 수 있다. 손자 얼굴을 보여준다는 구실로 자주 엄마를 보러 와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오빠네  첫 째는 소년야구팀에 소속되어 있고, 거실 찬장에는 유니폼을 입은 조카의 사진이 여러 장 자리 잡고 있었다. 오빠는 옛날부터 운동신경이 나빠서 오직 공부에만 힘을 쓰고 있었으니까, 분명 새언니의 유전자가 유수한 것이겠지.

“점심은 먹었니? 우동이나 소면이라도 삶아줄까?”
“소면이 좋겠다.”

그래 오냐, 라며 일어서서 부엌으로 가는 엄마의 등을 눈으로 좇았다.
2년 만에 본 엄마는 아주 약간 작아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보기에는 기력이 쇠한 모습은 없어서 안심했다. 옛날부터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쪽이 많았던 사람이었으니, 파트타임을 그만두고 갑자기 늙어버리지는 않았을지 걱정했지만, 아직은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거실을 둘러보아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먼지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할 일이 없어서 계속 청소를 하는 것일 테지.
독립했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의 거실을 한동안 바라본 뒤, 보리차를 전부 마시고 일어서서 불전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편의상 불전이라고 부르지만, 그렇다고 불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목재로 만든 간소한 제단에 돌아가신 아빠의 영정이 놓여 있고, 향을 피우는 향로와 초가 한 자루, 그리고 큰 액자와 손바닥 크기의 작은 나무 조각상이 있을 뿐이다. 조각상 받침대 부분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크게 새겨져 있고, 같은 도형이 액자 속에도 들어가 있었다.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아빠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엄격했던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우리집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아빠와 잘 맞지 않아서 싸움만 했던 오빠는 완전히 얌전해졌고,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울기만 했지만, 점차 아빠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고토미”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돌아보자 이쪽을 쳐다보는 엄마의 얼굴이 있었다.

“소면, 다 됐다.”
무심히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어딘가 딱딱하고, 아빠의 영정을 보고 있던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 바로 갈게.”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보니, 엄마의 얼굴은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책망하는 듯한 눈빛을 느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엄마는 옛날부터 계속 나를 그날의 눈빛으로 보았으니까.
정확히 아빠가 사고를 당한 무렵부터다. 
점심을 먹고 나는 2층에 있는 내 방으로 갔다. 방 안은 약간 먼지가 앉은 정도였지만, 오래 사용한 책상, 싱글 침대, 위에서 두 번째 칸이 무거워서 열기 힘든 옷장 등, 익숙한 광경을 보니 역시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했다.
짐을 두고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았다. 돌아가기 전에 모처럼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급생과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하려니 주저하고 말았다. 일에 미쳐서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하지 못했으니까, 이럴 때 놀 상대가 한 사람도 없었다. 연인이라도 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근래에는 마땅한 인연도 없었다.
비참한 기분에 빠져들 무렵에 띠리링이라는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이 울렸다. 설마라고 생각하면서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업무 메일이다.
메일은 2통. 한 통은 후배 사원이 보낸 긴급하지 않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보고였다. 답신은 나중에 보내면 된다.
그리고 다른 한 통.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고, 나는 저절로 상체를 일으켰다.

‘말했던 원고 보냅니다. 나나키 유시로’

취재처에서 보내준 것일까. 첨부 파일에는 ‘기목의 저주’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제목이...... 기목? 기목의 저주......?”

그의 작품답게 불길한 네이밍에 흥미가 동했다. 원고를 읽는 것은 휴가를 끝낸 뒤로 미뤄두고 싶었지만, 막상 받은 이상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참기 힘들 것 같았다.
메일을 스크롤하자, 마지막에 ‘추신’이라는 글이 있었다.

‘추신 원고를 읽고 불가해한 일이 발생했다면, 신속히 나에게 보고할 것’

굳이 에둘러서 하는 말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피부에 들러붙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의 내 심경을 나타내는 듯한 불쾌함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저항할 수 없는 감각에 이끌려 짐 속에서 노트북을 꺼내서 원고 데이터를 열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시노미야 사토루라는 인물은 홋카이도의 어느 지방 도시 초등학교에 전학해온 6학년 소년이었다.
 
제1장 기 (1)

벨소리를 신호로 수업이 끝나고 담임교사가 교실을 나가자, 시노미야 사토루는 크게 한숨을 쉬고, 두 팔을 위로 뻗으면 기지개를 켰다.

“야야, 들어봤지?”

책상 속에서 읽고 있던 책을 꺼내고 책갈피를 끼워두었던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2칸 뒤의 자리에 앉은 숏커트 머리의 여학생이 목소리를 높였다.

“뭔데? 무슨 일인데?”

바로 옆에 서 있던 포니테일 여학생이 눈을 반짝이면 물었다.

“미야베 마을의 7가지 불가사의 말이야.”
“그런 흔한 괴담이랑 다르다니까. 이 마을 여기저기에 실제로 있단 말이야.”
“7가지 불가사의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포니테일 소녀가 턱에 손가락을 대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딱히 훔쳐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두 사람은 너무 큰 소리로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떠든 탓에 의식하지 않다고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알아, 그 이야기.”
“뭐야, 멋대로 끼어들지 말아 줄래.”

끼어들었더니 숏커트의 소녀 요시카와 우이코가 불편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끼어든 머리를 빡빡 깎은 마츠바라 류지는 눈을 반짝였다.

“산로쿠 저택의 ‘드레스 입은 유령’, 마을 도서관에 있는 ‘사자의 책’ 말하는 거잖아.
“두 개뿐이잖아.”

포니테일의 코사카 시호가 지적했다. 잠시 주춤한 마츠바라 대신에 유이코가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은 뒤에 말을 이었다.

“쓰레기산의 ‘귀녀’, 모노미자카의 ‘옛 우물’, 그리고 이 학교에 있는 ‘인연의 동상’, 난죠 중학교의 ‘운동장에 솟아난 잘린 머리’, 그리고 마지막이 녹지 공원의 ‘저주받은 나무’야.”
“그 공원이라는 곳이 큰 연못이 있는 후쿠야마부 녹지 공원?”
“그래 맞아. 그 연못 옆에 있는 오래된 커다란 나무 밑에 사진을 묻으면, 찍힌 사람에게 엄청나게 무서운 유령이 찾아온대. 게다가 그냥 유령이 아니라 ‘뭉개진 얼굴의 여자’라는 원령이야.”
“원령? 그게 뭐야.”
그녀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이코가 말하는 무서운 이야기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무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 모여들었다.
“나도 알아! 원령은 사람을 공격하는 유령을 말하는 거야. 어제 ‘일본 괴기 특수부’에서 아시야 도겐인 설명했었어.”
“나도 봤어! 그 심령사진 대단했어. 절대로 진짜라니까.”

어느새 반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이야기에 들어온 상태였다. 저마다 유령은 존재하느니, 저주는 진짜라는 , 아시야 도겐이 최강의 영능력자라는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시야 도겐은 최근 심령 특집 방송에서 인기를 얻은 영능력자이자, 유명한 아베노 세이메이와 라이벌 관계였던 것으로 유명한 음양사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람이다. 사토루도 방송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흔한 속임수와 틀리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었다.
이 학교의 아이들은 그런 저속한 오락 방송을 특히 좋아해서, 심령 특집 방송이 방송된 다음날은 꼭 이런 식으로 반 전체가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를 괴담 이야기뿐이었다.

―진짜, 한심하네.

사토루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책갈피를 끼워서 책을 덮은 뒤에 책상 속에 넣고 일어서자, 일부를 제외한 반 학생 대부분의 시선이 어쩐지 사토루에게 집중되었다.

“어, 뭐야 시노미야. 뭐 불만이라도 있어?”

곧바로 시비를 걸어온 것은 아라사와 타이치라는 반의 중심인물을 자처하는 녀석이었다.

“딱히 없는데.”
“거짓말하지 마. 너 지금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 쉬었잖아.” 

아라사와 타이치는 키는 작은 대신 목소리가 커서, 자신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어필하고 싶어 했다. 즉, 타인의 관심에 목을 매는 유형이다.

“자기는 안 믿는다고 우리를 바보 취급했잖아.”
어차피 틀린 말도 아니라서 사토루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라사와의 말을 인정했다는 뜻이며, 그러면 당연히 다수의 빈축을 살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뭐, 기분 나빠.”
“자기도 항상 불길한 책이나 읽는 주제에......”

여기저기서 사토루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에 일일이 부정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도 피곤하므로,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나 교실을 빠져나왔다.
사토루는 유령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죽은 뒤에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 현세에 머무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사토루도 책이든 영화든 호러 장르를 좋아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창작물이며, 현실에 유령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는 일 따위는 애초에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묘사라도 즐길 수 있고, 공포에서 도망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여기면 픽선보다도 훨씬 더 최악의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사토루에게 호러라는 장르는 그런 존재였다.

방과 후 청소 당번을 끝마친 사토루가 하교하고 있는데,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자 같은 반의 오노다 나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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