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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노트(번역)/재미란 무엇인가?

'시대성'이란 무엇인가?

by blacksnowbox 2022. 9. 30.

'시대성'이란 무엇인가?|오타니 아키라

작성일 : 2020년 5월 14일

타이틀 이미지 제작 : 16号

♪돌아와~ 다시 돌아와~ 흐응흥~ 흥흥응으~~(※저작권 대책) 이처럼 시대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데, 여러분은 어떠한가. 느껴본 적이 있는가. 시대의 회전을. 시간의 흐름만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다는 말을 하지만, 소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임에 ‘시대성’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에는 소설의 시대성에 대해서 알아본 자리를 마련했다.
 
<-저작권 대책 부분은 中島みゆき(나카지마 미유키)라는 일본 가수의 時代(세월 혹은 그 시절)라는 곡입니다. - 원어 그대로 해석하면 ‘시대’지만, 노래 사가나 내용을 보면 세월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일본어에서는 ~때, ~시절을 ‘時代’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학생 시절’을 ‘학생 시대(学生時代)’이라고 쓰는 거죠. 노래 가사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구절을 ‘そんな時代もあったね’라고 씁니다. 일본어는 구어와 문어의 구분이 뚜렷한 편입니다. 그래서 노래 가사는 대부분 문어체로 씁니다.
 
목차
1. 시대성을 표현하는 3가지 큰 포인트
2. 같은 시대에 살아가는 독자의 반응을 생각하자

시대성을 표현하는 3가지 큰 포인트

먼저 시대성이란 무엇인가? 심플하게 말하면 ‘그 시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검호 소설(일본 시대극에 해당하는 무사가 등장하는 소설을 말한다. 검술 대결이 핵심인 일본 무협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소설이 대표적이다)에서 에도 시대의 정취가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소설의 평가에서 시대성이란 그것을 쓴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했는가 하는 점을 주시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역사 소설도 있고, 무척 오래된 근미래 SF도 존재한다.
 
픽션에서 시대성을 따지는 포인트는 크게 나누면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1 테크놀로지
2 유행, 풍속
3 가치관
 
1번은 말할 것도 없이 셰익스피어 시대에 드론은 없었고, 현대의 그리스인은 토가(고대 로마 시대의 의상)를 입고 살지는 않는다. 다만 만화든 소설이든 수십 년 단위로 연재가 이어지면, 1권에서 컴퓨터가 드물었는데, 올해 나온 최신권에서는 캐릭터(1권의 시간과 연령은 변하지 않고) 전원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같은 전혀 새로운 공간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일도 있지만, 불가항력이라고 해야 할지, 장기 연재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 일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2번의 유행과 그 시대의 풍속, 문화 등의 묘사. 주의해야 할 부분이 지금 현재를 그리려고 했는데 미묘하게 낡은 느낌이 되는 패턴이다. 2020년의 시부야를 부대로 하고 있는데 ‘루즈삭스를 신은 여고생이 샤란Q를 듣고 있다’ 같은 묘사를 하면 독자 전원이 레알 최악이라고 평가하게 된다.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에 유행의 간격이 더 빨라진 만큼, ‘최신의 무언가’를 묘사하고 싶다면 자료 조사와 취재는 필수다. 아는 척 쓰면 험한 꼴을 보게 된다. 나와 친숙한 장소, 시대를 무대를 할 때 무심코 잘 안다는 듯이 신나서 쓰게 되는데, 귀찮아도 조사하자. 특히 많은 사람이 틀리기 쉬운 것이 이성의 문화 풍습이며, 편견을 그대로 드러나는 포인트이기도 하므로, 남녀 모두 주의하자.
 
3번의 가치관. 요즘 점점 중요도가 높아지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유행도, 테크놀러지도 관계 없는 완전 오리지널 세계관의 판타지 작품이 있다고 해도, 이 포인트를 무시할 수 없다(무시하고 쓸 수는 있지만, 좁은 시야의 글이 되고, 논란의 불씨가 되어 상업성도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한때 지구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해 폭력으로 노예로 만들고 매매하는 행위’가 아주 평범한 장사로 여겨지는 시대와 장소가 있다. 지금은 물론 다르다. 노예, 인신매매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좋은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간의 가치관이 달라진 것이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복종)과 폴리티컬 커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정당성. 소위 말하는 PC)라는 말을 듣기만해도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지만, 이것은 인류가 의식의 흐름을 끊지 않고 더 좋은 개인과 사회에 대해서 고민해온 지식과 가친관의 집대성이다. 아무리 거부해도 우리의 현대 생활 역시 복종과 PC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시대의 작가가 되고 싶다면 시대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조사하자.

 

<-더 나은 시대와 세상을 되도록 애썼던 새로운 가치관의 변질이나 왜곡도 시대성을 나타내는 가치관인 셈이네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의 반응을 생각하자

‘옛날에 히트쳤던 작품이지만 지금 읽으니까 받아들이기 힘든 가치관이다’ 하는 작품이 많다. 몇 백 년을 이어온 유명한 고전도 가치관이나 풍습은 현대인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많다. 그런 부분을 재해석한 작품도 많다.
 
그런 현재는 가치관도, 테크놀로지도 전부 다른 오래된 이야기가 왜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새로운 팬을 끌어들이고 있는가 하면, 흔한 말이기는 하지만 ‘인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어도 인간이 가진 감정, 희로애락이 완전히 달라지거나 새로운 감정이 발현되는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슬프고, 맛있는 것을 먹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일과 신앙 등의 길을 갈고닦고, 5000억 정도 있다면, 출세하고 싶다, 증오하는 대상을 죽여버리고 싶다 등, 인간의 자람, 욕망, 감정의 근원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부분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십년 뒤 혹은 백 년 뒤에 읽었을 때도 낡거나 촌스러운 것은 싫어서 유행과 시사성, 고유 명사나 예능은 최대한 배제한다’는 작가도 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먼 미래의 독자보다는 지금 이 순간,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의 반응을 신경 쓰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독자에게 먹히지 않으면 어차피 백 년 뒤까지 남을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는 것보다 now, here에 충실하자. 잘 관찰하자. 그곳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지금만 쓸 수 있는 것이니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술 방식에도 시대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모비딕 소설을 읽어보면 처음에 뱃사람이나 항구 도시에 대해서 대단히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지루하기만 하던 이 부분을 보고 생각했던 것이 모비딕이 처음 출간했던 1850년대의 시대상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평생 나고 자란 땅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던 시절, 유럽이면 죽을 때까지 바다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았겠죠.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이 일반 서민에게도 허락되던 시기였던 것이 아닐까. 모비딕을 그런 시대의 사람들은 고려한 서술 방식이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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