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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패를 모신 불단의 종을 재빠르게 두드려서 울린 뒤에 나는 바닥에 놓인 가방을 집었다.
이른 아침이었다. 낡은 커튼의 빈틈으로 서광이 쏟아지며 다다미 위의 먼지를 비췄다. 하룻밤 창을 닫아두었던 다다미방을 가득 채운 열기 탓에 빈말이라도 상쾌한 아침공기라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커튼 밖으로 들리는 더운 여름날의 매미 소리. 오늘도 폭염인 걸까.
“오늘도 빠르네.”
현관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잠옷 차림의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아아, 응.”
“지금, 몇 시? 아직 6시잖아. 괜찮은 거니? 어제도 한참 늦게 돌아왔지?”
“괜찮아요. 푹 잤어요.”
거짓말이었다. 어젯밤도 거의 막차를 탔고, 집에 왔을 때는 이미 다음 날이었다. 지금도 수면 부족으로 몽롱했지만, 부족한 잠은 출근길 전철에서 보충하면 충분했다. 어차피 통근 시간은 편도로 2시간 이상 걸린다.
구두를 신으려고 현관 앞에 앉았을 때 뒤에서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 하루오.”
“왜요?”
“하지 그러니?”
“뭘?”
“독립. 도쿄까지 매일 힘들잖아? 더는 날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형의 사고 후에 엄마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한동안 병원을 다녔고, 겨우 평범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다.
그때는 회복했다고 안심했지만, 병은 상상 이상으로 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대학생 때 장기 아르바이트로 집을 비웠을 때였다. 돌아와서 쓰레기장으로 변한 집을 보고는 두 번 다시 집을 비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니, 괜찮아요. 도쿄는 집세도 비싸고. 빌려도 어차피 잠만 잘 텐데.”
“회사에서 주택 수당 같은 건 안 나오니?”
“나오기는 하는데..... 어디까지나 보조니까요. 통근 수당까지 계산하면, 정기권이 더 싸요. 게다가 지금은 원격 근무도 가능하고.”
“그러니? 그러면 다행이다만.......”
정기권이 더 싸다는 말은 물론 거짓말이다. 내가 소속된 부서는 대인 업무나 외근이 중심이라서 원격 근무로 처리 가능한 일이 없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애초에 취급하는 ‘상품’ 자체는 어떤 의미로 원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겨드릴 필요는 없다.
“하루오.”
안쪽으로 말려들 구두의 혀를 바로잡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이름을 불렀다.
“무리는, 하지 마.”
그 순간 나는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 동굴로 거친 파도가 들이치던 광경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바로 지우고 빠르게 구두를 싣고 일어서서 어깨를 추켜올렸다.
“무리라니, 뭐가?”
시치미를 떼고 현관 손잡이를 잡았다.
“다녀오겠습니다.”
문을 열었다.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가 확 하고 얼굴을 덮쳤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눈을 찌르는 아침 햇살을 손으로 가리면서 마음속으로 반론했다.
무리라고 생각하면 거기가 한계예요, 엄마.
“타카기. 아침은, 그게 다야?”
업무 시작 전에 책상에서 어제 남은 일을 정리하면서 프로틴바를 씹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보라색 숄을 걸친 여성이 의아하다는 듯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하나무라 카요코. 내 신입 교육을 담당했었다. 1살 아이의 엄마인 30대. 소탈한 성격으로 아이를 낳을 때 깔끔하게 잘랐다고 하는 쇼트커트가 잘 어울린다.
“아아. 지금 바로 외근 나가야 해서요.”
“타치가와 비행장 강습이잖아. 그러면 오히려 더 잘 먹어야지. 교관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나면, 꼴불견이잖아.”
눈앞에 랩에 싸인 삼각형 물체가 놓였다. 옛날이야기에나 등장할 법한 커다란 주먹밥이다. 당황했지만, 이론은 받지 않겠다는 상사의 단호한 태도에 못 이겨 머뭇거리다 주먹밥을 집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회사의 건강 진단이 있었는데, 불건전한 생활을 보내는 부하의 건강 관리도 좀 하라고 위에서 독려하기라도 한 걸까.
오랜만의 편의점이 아닌 주먹밥은 가정의 맛이었다. 알맹이는 후레이크가 아니라 제대로 구운 연어가 들어 있었다. 은근한 짠맛에는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는 하나무라 씨의 모습이 담긴 듯했다. 이것이 엄마의 손맛이라는 건가.
“애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하나무라 씨는 내가 먹는 모습을 지긋이 관찰하면서 설교 모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젊은 친구가 잘 안 먹으면 괜히 걱정되고 그래.”
“...... 잘 안 먹는 젊은 남자라면 저기에도 있는데요.”
나만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외근으로 드문드문 자리가 비어있는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근처의 책상 섬에 홀로 고독하게 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가몬 요이치. 나보다 2기 위의 선배 사원으로 부서는 다르지만, 인턴 시절에 신세를 진 인연으로 안면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종업원이 50명도 안 되는 벤처기업에서는 대부분의 사원이 안면이 있는 사이나 마찬가지다. 너무 말라서, 해골이 안경을 쓴 듯한 모습의 선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노골적으로 모른 척을 하며, 무심한 얼굴로 노트북을 만지기 시작한다. 온몸으로 ‘신경 꺼’ 아우라를 발산했다. 선배와는 거리끼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지만, 이 사람은 결코 세심한 성격도 아니고, 사교적이지도 않다.
“가몬.”
하지만 하나무라 씨는 그런 아우라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선배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아침밥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먹었습니다.”
“뭘?”
“그게...... 히비키야의, 카레.”
“호오. 그런데, 거기 오픈이 11시였지 않나?”
뚝하고 대답이 끊겼다. 마무리가 아쉬워. 선배가 내게 구원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방금의 태도를 보면 너무 염치가 없다. 나도 무시했다.
“그러면, 이거. 할당량이야.”
선배의 책상에도 쌀덩어리가 놓였다.
“아침에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하루 종일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요......”
선배는 원망하는 듯이 중얼거리면서 마지못해 배급품으로 손을 뻗었다.
“자, 이걸로 두 사람 모두, 일단 칼로리는 섭취했는데.”
하나무라 씨는 선배의 무시하고 계속했다.
“영양 밸런스는 엉망이니까. 밤에 각자 야채를 꼭 먹을 것. 아만 씨는 혼자 살지? 가끔은 해 먹기도 해? 타카기는.”
하나무라 씨의 말이 멈췄다. 그녀에게는 우리 집 사정을 어느 정도 말해두었으니 어떻게 물어야 할지 망설이는 투다. 내가 먼저 대답했다.
“합니다, 요리.”
“어머니가?”
“아니요, 제가요. 평일에는 만들 여유가 없어서 주말에 일주일 분을 만들어 용기에 나눠서 냉동시켜 둡니다. 그러면 어머니도 편하게 드실 수 있거든요.”
그렇구나, 라며 하나무라 씨는 신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집이 시즈오카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요즘은 반찬가게도 제법 먹을만하니까.”
전혀 무리하고 있지 않다고 반론을 하려는 순간, 가몬 선배가 ‘시즈오카?’라며 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시즈오카라니. 너 그렇게 멀리서 통근하는 거였냐? 왜?”
하나무라 씨가 선배를 보고, 그걸 이제 안 거야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선배와 사이가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내가 집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탓이지만, 상대의 개인 사정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회사, 주택 수당이 그럭저럭 나오잖아? 시즈오카면 정기권 가격도 만만치 않을 테고, 세이부신주쿠센 근처면 집세도 그렇게는.”
“요즘은 시즈오카에서 통근하는 사람도 제법 있지 않나?”
사정을 아는 하나무라 씨가 말을 돌리듯이 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게다가 본가에서 살면 편하잖아...... 그렇지?”
나는 모호한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선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더니, 안경을 고쳐 쓰고 손에 든 쌀덩어리를 부모의 원수처럼 노려본 뒤에 덥석 물었다.
본래 시설 점검이나 재해구조용 드론을 개발했던 모양이지만, 점차 사업 영역을 넓혀 지금은 원스톱 서비스 점검 솔루션이나 드론 도입 컨설팅, 일반 사용자 대상의 드론 강습을 하는 교육 사업 등의 고객 서비스도 제공한다.
입사 3년 차인 내가 소속된 곳은 남녀노소 드론 초보자들에게 실기 지도를 하는 ‘교육 사업부’다. 나는 신주쿠구에 있는 본사에서 도쿄 서부, 타치가와시에 있는 드론 실내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교외의 대형 창고를 개축한 스포츠 시설 내부에 있다. 우리 회사 소유 건물은 아니지만 관리 단체와 연간 사용 계약을 맺었다.
수강생들은 시작 30분 전에는 이미 모여 있었다. 총 4일간의 단기 강좌로 전반 2일은 이론 수업, 후반 2일은 실기지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은 내 담당이 아닌 탓에 그들과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시간이 되고 눈앞에 정렬한 사람들 앞에 서자 급격히 졸음이 몰려왔다. 방금 탄수화물을 대량 섭취한 결과 인슐린 과다분비가 수마를 불러온 모양이다. 가몬 선배의 불평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면 출석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기합으로 졸음을 떨치고 명부를 읽었다.
“자, 그러면 1번, 주식회사 코이와타 제작소, 우치야마 유타카 씨......”
네, 하고 배가 불룩한 폴로셔츠를 입은 중년 남자가 대답했다. 드론이라고 하면 젊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수강생은 연령의 폭이 넓다. 회사 업무로 사용한다, 퇴직 후의 취미, 부업 목적 등 수강 이유는 다양했다. 그만큼 드론에 이목이 쏠려있다는 증거다.
“2번, 주식회사 아르스 건설, 미우라 호시 씨. 3번, 개인사업자, 미나가와 사토루 씨.”
명부에 따르며 오늘 수강자는 6명. 대부분이 나보다 연상이고, 그중에 4명은 민간인, 2명은 소방관 제복을 입은 공무원이다. 소방 현장에서도 드론은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지, 최근에는 소방관의 참가도 늘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나와 비슷한 연령의 수강생이 있었다. 넉넉한 사이즈의 트레이닝복과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써 용모는 알기 어려웠지만, 가냘픈 골격으로 미뤄 보건대 아마도 여성? 연령의 폭이 넓기는 했지만, 성별에는 명확한 쏠림이 있고, 여성 수강생은 드물다.
“4번, 유한회사 알토 디자인, 니라사와 아오 씨...... 니라사와 아오?”
무심코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니라사와...... 아오? 동명이인? 아니 그런데, 이런 특이한 이름이 또 있을 리가.
명부를 보던 얼굴을 들었었더니,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여성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나를 수상쩍은 시선으로 보았지만, 잠시 뒤에 가느다란 눈매가 한껏 커졌다.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윽고 손가락 틈으로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 타카기 하루오?”
니라사와 아오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육상부의 높이뛰기 에이스로 말수가 적고 무뚝뚝했지만, 단정한 용모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지독한 노력가라는 이미지였고, 당시는 육상 트랙에서 일몰까지 연습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여러 번 실패하던 높이를 넘었을 때 작게 파이팅 포즈를 하던 모습이 스냅사진처럼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유달리 친했던 사이도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는 같은 반 친구로 평범하게 대했고,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나눴던 정도의 사이다. 저쪽도 기쁨보다는 당황한 표정이었으니, 나는 어, 오랜만이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넨 다음은 조용히 업무에 집중했다.
그래서 강의 종료 후,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와서 조금 놀랐다.
“오랜만이야.”
비행용 실내코트 곁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자, 갑자기 배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놀라면서도 평온한 척 돌어보았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뭐 그럭저럭. 타카기는?”
“나도, 뭐 그렇지.”
아오는 고등학교 때와 제법 인상이 달랐다. 옛날에는 쇼트커트였지만, 지금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다. 화장은 맨 얼굴에 가까웠지만, 립스틱과 눈썹 모양에서 제법 여성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정, 이렇게 친한 척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놀랐어. 누구랑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타카기였으니까.”
“나도. 니라사와, 드론에 관심이 있었던 거야?”
“관심보다는...... 좀, 일 하는데 필요해져서.”
“일? 그런데, 너네 회사는......”
“어. 디자인 회사.”
니라사와는 갑자기 둑이 터진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지방의 웹 제작회사에 일하는 것. 그 회사가 최근 영상 제작을 시작했다는 것. 자기도 어쩌다가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자비로 공중촬영용 드론을 사게 된 일. 처음에는 싫었지만, 공중촬영을 시작했더니 의외로 빠지게 되었던 일.
수다쟁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이렇게 자기 일을 내뱉는 타입이었던가.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사람을 바꾼다. 사회로 나와서 그녀 나름의 사교성을 갖추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이야. 사장이 자격을 따고 오라니까, 이 강좌에도 참가했어.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하니까, 이왕 하는 거 여행 기분으로 도쿄까지 가볼까 하는 마음에 여기를. 앗, 미안. 방금부터 나 혼자 떠들었네.”
“아니, 괜찮아.”
나는 드론의 배터리를 케이스에 담으면서 대답했다. 다만 수다스러움보다 더 놀랐던 것은 니라사와의 상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담배였다. 아직 그녀가 선수였을 무렵, 패스트푸드도 먹지 않는 성실한 여고생이었다.
“그나저나, 타카기는 왜 드론 회사에서 일하는 거야?”
니라사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답을 망설였다. 우리 집 사정은 어디까지 그녀에게 말했었지.
“어...... 글쎄. 역시, 드론은 시대의 최첨단이니까, 장래성도 있고 말이지......”
“타카기도 드론으로 영상도 찍어?”
“아니. 나는 주로 조사용.”
“조사용?”
“요즘 드론은 취미용 아니면 공중촬영용 드론뿐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개발되고 있거든. 건물 점검용 드론이라든가, 농약을 살포하는 농업용 드론도 있고. 내가 주로 담당하는 것은 건설이나 재난 현장을 조사하는 조사용 드론. ‘아리아드네’라고 몰라?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재해구조용 국산 드론인데......”
“흐음......”
이번에는 반응이 약했다. 역시 공중촬영 외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드론이지만,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일반의 인지도는 낮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재난구조라...... 역시 형의 사고 때문이야?”
케이스를 덮던 내 손이 멈췄다.
“내가, 말했던가?”
“응”
떠올랐다. 3년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에서 내가 딱 한 번 니라사와와 친밀하게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의 일이다. 밤에 해안선을 자전거로 달리던 나는 교복 차림으로 어두운 바다에 들어가려는 그녀의 모습이 수상해서 불러 세웠다.
“타카키, 그때 절대로 내가 자살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니라사와가 큭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달려와서, 솔직히 무서웠어. 도와주려고 온다기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니까.”
약간 낯을 붉혔다.
“어쩔 수 없었잖아. 그때 상황이.”
“그렇지. 뭐, 내 행동이 문제였지만......”
그 일이 있기 몇 개월 전에 니라사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선수 생명이 끊어질 정도의 큰 상처였다. 니라사와는 밝은 척했지만, 심정을 헤아린 나머지 반 친구들이 니라사와를 곪은 종기를 다루는 듯한 분위기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그때 타카기의 말은 전부 기억해.”
니라사와는 해맑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말하는 사람, 처음 봤다니까. 형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면, 거기가 한계라는 말이야. 우리 코치보다 더 열의 있게 말하네, 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안해. 그거, 습관이야. 내가 아니라 형의 습관이었지만.”
“그렇구나. 그 말은 형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지. 기특하네. 사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나도 덕분에, 재활 좀 열심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었거든. 솔직히 육상에도 아직 미련이 있었고. 뭐, 결국 무리였지만.”
조금 놀랐다. 그 뒤로 깔끔하게 은퇴했고,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 내 말 따위, 틀림없이 흘려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티를 내지 않을 만큼, 역시 그녀는 심지가 굳은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갑자기 니라사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명칭에 거듭 놀랐다.
“어...... 아아. 거기 방범 시스템에 우리 회사 제품이 들어가기는 했는데...... 잘 아네.”
“아는 게 뭐야. 나도, 참가자.”
아오는 자신을 가리켰다.
“참가자?”
“도시 주민 모집에 응모하고 당선됐어. 장애인 대상자로.”
“장애인 대상자로?”
WANOKUNI 프로젝트란, 국토교통부가 대형 건설회사와 IT기업과 함께 건설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다.
최근 IT기술을 사용해 살기 좋은 도시 건설을 목표로 하는, 이른바 ‘스마트시티’ 개념인데, 시스템 구축에 우리 회사도 참가한 만큼, 나도 말단이지만 한 손 거들고 있다.
장애인 대상자라고 해서 나는 납득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건강한 사람과 장애인이 구분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즉 장애물 없는 도시(barrierfree) 혹은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의 도시 구축이라는 목표도 있다. 다양한 타입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집세 등 우대제도와 함께 유치되었다. 니라사와는 거기에 응모한 것이다.
그녀의 카코바지에 가려진 다리를 보고 말했다.
“그 다리, 아직 후유증이 남아 있는 거야?”
“나 아니야. 여동생.”
“여동생?”
“실어증이야. 사고 충격으로, 그때부터 계속.”
교통사고 피해자는 니라사와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여행 중에 차가 연쇄추돌사고에 휘말려, 일가족 전부에게 불행이 쏟아진 것이다.
"올해 9살인데 말이야. 아직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낯선 곳이고, 목소리가 안 나오니까, 잠시 눈을 떼면 금방 미아기 되거든. 그래서 자주 경찰 신세를 지는데, 감시카메라 중에 딱 하나 드론 시점인 것이 있어. 그거 이름이 분명, 아리아드네야.”
나는 초기형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거나 배회 중인 고령자 보호가 주요 용도로 개발된 자동순회기능이 있는 타입이다.
“참, 도움이 되지. 인터넷 기술 덕분에 편리하고, 장애인 대상의 서비스나 수당도 두둑하고.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거의 보험금이랑 유족연금에 기대서 살았으니까. 이사 전과 후는 천양지차야. 직업도 알선해 주니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겨도 지금 회사를 그만둘 수 있고 말이야.”
우리 회사, 상당히 블랙이거든이라며 니라사와는 웃는다.
니라사와가 가슴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여기 금연, 하고 주의를 주려고 했지만, 어딘가 혼이 빠진 듯한 니라사와의 공허한 눈빛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있잖아, 타카기.”
찰칵하고 라이터의 불이 붙고, 담배 끝이 빨갛게 변했다.
“...... 왜?”
“사실은 말이야. 다음에 타카기와 만나면 말하려고 생각했던 게 있어. 말해도 돼?”
“어? 아, 어어...... 해.”
“있잖아. 그 사고 뒤에, 나, 많은 사람의 격려를 받았어. 친구라든지 코치도 있고, 다른 학교 라이벌이었던 여자아이라든지. 그런데 말이지. 그중에서도, 특히”
공허한 눈이 이쪽을 향한다. 잠시 뒤에 니라사와는 천천히 입 가장자리를 올리고, 훅하고 내게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타카기가 가장, 짜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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