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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의 문장

하! 그놈에 ~(으)로부터

by blacksnowbox 2022. 6. 5.

웹소설뿐 아니라 신문기사 등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이상한 표현.

 

|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로부터'를 검색한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e1b08427dbb848b38f050878ac3b759f

 

네이버 국어사전

3개의 한국어 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 상세검색, 맞춤법, 보조사전

ko.dict.naver.com

From의 영향으로 어떤 행동의 출발점이나 비롯되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조사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국어대사전에는 버젓이 올려놓고, 우리말 바로 쓰기에서는 또 아니라는 내용에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전은 OX가 아니라 이런 표현도 있는데 이런 의미다라고 밝히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네요.

사전에 있다고 절대적으로 맞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틀린 것도 아니라는 말이 되네요. 어디까지나 기준을 잡는데 의의가 있으니까요, 뭐.

 

표준국어대사전의 예문인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다.'는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다'로 쓰는 게 맞습니다.

꼭 '로부터'나 '에게서'일 필요도 없다. 물론 의도나 시점에 따라서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아버지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아버지가 편지를 보내왔다/아버지가 보낸 편지가 왔다 등등 ~로부터를 잠시 지우고 생각해보면 의외로 다양하게 표현이 가능합니다.

 

간단합니다. 집에서 가족에게 하는 말을 떠올려 보세요.

아버지가 뭔가를 보냈다고 했을 때, "엄마, 아버지로부터 OOO 왔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문제는 '로부터'를 에게서 외에도 '부터, 에서, 에게서, ~의, 필요한 동사를 생략' 등을 뭉뚱그려서 통일하는 기현상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제가 보았던 세 줄 짜리 신문 기사에는 '------로부터 -----로부터 -----로부터' 세 번이나 이어서 나왔을 정도니까요. 이쯤 되면 도무지 뭐가 어디서 어디로 갔다는 말인지 이해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언어는 분화된다고 하는데, 흘러 흘러 대해에서 만나는 강줄기도 아니고 저 많은 뜻을 '로부터' 하나로 통일되는 상황이 정상일까요?

 

앞서 올렸던 글에서 밝혔듯이 로부터의 뜻을 명확히 안다면 굳이 남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웹소설은 인물의 대사라는 특성을 활용해서 바르게만 쓴다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등장 캐릭터가 모두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는 새나라의 착한 어린이는 아닐 테니까요.

 

저는 번역하면서 로부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역자 교정으로 날아온 원고에서 발견하는 즉시 수정하는 것이 '로부터'이고, 담당 편집자에게 항상 밝힙니다. 지긋지긋한 '로부터' 좀 쓰지 말아 달라고요.

 

웹소설에서 가장 시급하게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특정 서술이나 사건이 종료된 이후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상황을 설명하면서 꼭 쓰는 "그로부터 몇 년 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A가 죽었다(어떤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후).

그냥, 그냥 '몇 년 뒤'라고 쓰면 됩니다.

뻔히 앞에 사건이 종료된 상황을 서술하고, 뒤에 '몇 년 뒤'하면 당연히 사건 종료된 시점부터 몇 년이 지났다고 누구나 인식하지 않을까요. 조건반사처럼 이 부분에는 무조건 이 표현이 들어간다는 식의 글을 쓰지 말아 달라는 뜻입니다.

 

(참고)

  • 미래로부터의 초대 -> 미래에서 온 초대 / 과거로부터의 편지 -> 과거에서 온 편지
  •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협박에 시달리던 성공한 사업가 ->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협박에 시달리던 성공한 사업가
  • 소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니 -> 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니
  • 그의 작품 영역은 수필로부터 희곡에까지 이를 정도로 넓었다. -> 그의 작품 영역은 수필부터 희곡에 이를 정도로 넓었다.
  • 로부터 10년을 방황한 뒤에야 그녀는 고향으로돌아왔다 -> 그 사건 이후로 10년을 방황한 뒤에야 그녀는 고향에 돌아왔다. / 그녀는 그 뒤로 10년이나 방황한 뒤에야 고향에 돌아왔다.
  • 나무 뒤로부터 얼굴을 살짝 내밀어 -> 나무 뒤에서 얼굴을 살짝 내밀어

 

오늘 봤던 웹소설 중에서 나왔던 문장이 상당히 기억에 남네요. 아, 오늘 봤으니까 당연히, 아...

 

'외부로부터 차단됐던 커튼을~~~~~~'

 

작가님이 주위를 막고 있던 뭔가가 걷혔을 때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커튼은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사물이잖아요. 그런데 위의 문장은 커튼이 외부와 차단되도록 다른 무언가로 막고 있었다, 즉 커튼이 어떤 밀폐된 공간에 있었다는 거겠죠. 다만 뒤에 '젖히다'라는 단어가 오니까 독자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어요.

 

'외부를 차단하던 커튼이 걷히고' 혹은 '외부를 차단하던 커튼을 젖히고'

 

로부터를 쓰셨다면 제 의견을 한번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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