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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작업 일지

2018년 3월 20일

by blacksnowbox 2018. 3. 20.

니키 준페이는 달팽이 꿈을 꾸고 있었다.
달팽이라고 해도 꿈이라서 평범한 크기는 아니다소용돌이 모양이 껍데기는 2 주택만 하다. 당연히 몸통은 전차 차량 크기는 족히 된다그런 괴물 같은 존재가 끈적한 기분 나쁜 점액질을 바닥에 남기면서계속해서 꾸물꾸물 따라오는 꿈이다.
물론 적은 한낱 달팽이다그렇게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는다하지만 좌우간 끈질기다어디까지고 한없이 끈덕지게 따라온다이미 숨은 턱까지 차올라 심장은 폭발하기 직전이다.
(모르겠다 대로 되라지)
그런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자포자기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은 먹힌 뒤의 일이었다왜소한 니키의 몸뚱어리는 소용돌이 모양의 껍데기 속을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졌다떨어지면서 마지막에 떠올린 것은 (소금이라도 뿌려볼걸)이었다.
그렇다 쳐도 달팽이에게 먹혀서 죽는다니…… 인생을 마감하는 방법으로는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그러지 말고 차라리 참아보기라도 할까고작 반세기그러나 반세기 옛날이라면 향년 오십 세로 천수를 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지금은 반환점을  통과한 나이다그러나…..
" 정도면 충분해"
니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피식 웃었다.
기묘한 체념과 함께머릿속 한편에서는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면서그러나 몸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졌다.
이윽고……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니키는 안면을 세게 박았다이상한데달팽이 위장이 이렇게 단단하다니……?
점차 잠이 깨고 니키는 책상에 박은 코끝을 문질렀다.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 결국 졸았던 모양이다사무직인 사람에게 4월의 날씨는 세이렌의 노랫소리다.
진한 아라비카 커피라도 마시려고 일어섰을 갑자기  개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비상구 창문 너머에 검고 커다란 눈동자  쌍과 아몬드 형 금색 눈동자가  위아래로 나열된 눈꺼풀을 깜빡였다.
비상구 건너편에는 고양이를 안은 소녀가 있었다.
얼핏 보아 열 일고여덟 살쯤 되었을까분홍색 원피스가  어울렸다고급 숙녀복 카탈로그에서 뛰어나온 듯한 미소녀다 리본으로 머리를 올려서 묶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웨이스트 스커트가 발람에 흔들릴 때마다 웬일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였다.
상대는 니키의 시선을 그대로 받으면서 싹싹한 미소를 지었다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부드러운 휘핑크림을 스푼 끝으로 살짝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손님이라고 하기에는 묘한 시점에 나타났다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자녹슨 경첩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삐걱댄다.

"…… 이런 데서,  하고 있는 거니?"

여기는 테마파트도유원지도 아니다지저분한 거리 부근에 있는 고색창연한 주상복합 빌딩 2층이다소녀가 올라온 비상용 나선계단은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풍성한 밤색의 머리카락의 소녀에게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었다.

"죄송합니다. 고양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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