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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온 드라군 3
-프롤로그-
먼 옛날.
전란과 압정이 휘몰아치는 암흑의 시대.
불합리한 세계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 앞에 [가수] 라 불리는 여신들이 강림했다.
여신은 노래를 사용해 마력을 발휘하는 능력자로,
그 압도적인 힘으로 각지의 영주를 토벌. 거친 대지에 평화를 불러왔다.
여신들은 [가희]로 존경받으며, 세계를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가수인 소녀 원은 세계에 안정과 평화를 불러올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가수를 총괄하는 자, 즉 세계의 정점에 선 존재가 되어 간다.
그런 어느 날 원의 언니인 제로가 드라군과 함께 나타난다.
제로 역시 가수이자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어째서, 제로는 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어째서, 드라군과 함께 행동하는 것인가?
그리고 가수란 도대체 무엇인가?
또다시 세계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었다.
Story 1 제로 - 종말의 비와 시작의 꽃
(원제 : ゼロ-終わりの雨と始まりの花)
01P.
비가 오는 날은 언제나 최악이었다.
끈질길 정도로 계속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맑은 날은 최악이 아니기는 했었나?
“어떻게 된... 거야......?”
옆에서 의문의 뜻을 담은 목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에도 간단히 사라져버릴 정도로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뭐 가라며 되묻고는 아주 조금 후회했다.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치는 인간이 나는 싫었다. 그런 녀석은 두 번 다시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너...... 울고 있잖아."
“너의 착각이야. 웃었어, 나는.”
무리도 아니다. 그녀에게는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시력을 잃은 상태다. 두 눈을 억지로 벌리고 바늘로 눈알을 마구 찔렀다. 더구나 그녀에게 가해진 고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바닥과 발바닥을 몇 번이고 인두로 지져 이미 썩은 내가 피어오르고, 사지의 관절은 모조리 망가져서 몸을 뒤척일 수조차 없었다.
나이도 어린 소녀에게 잔혹한 짓을 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주란 놈들은 그런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은 봉기했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그렇다, 어리석다. 봉기는커녕, 무기조차 들지 못하고 탄로가 났다. 동료들의 밀고로.
02P.
타인을 믿었기 때문이다. 배신하지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주모자인 다섯 명이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계획의 모든 내용과 가담한 자들의 이름을 말하면 풀어주겠다 한 모양이지만, 물론 거짓이었다. 속는 인간은 대게 몇 번이고 다시 속는다.
무엇보다 곧바로 자백한 자도, 그녀처럼 완강히 입을 열지 않은 자도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당하고 나서 결국 납작한 돌로 포장된 광장 바닥에 나뒹굴었다. 속든 속지 않든, 결과는 같았다. 영주에 의한 그들의 처벌은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평했다.
타인을 믿었기 때문이다. 배신하지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주모자인 다섯 명이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계획의 모든 내용과 가담한 자들의 이름을 말하면 풀어주겠다 한 모양이지만, 물론 거짓이었다. 속는 인간은 대게 몇 번이고 다시 속는다.
무엇보다 곧바로 자백한 자도, 그녀처럼 완강히 입을 열지 않은 자도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당하고 나서 결국 납작한 돌로 포장된 광장 바닥에 나뒹굴었다. 속든 속지 않든, 결과는 같았다. 영주에 의한 그들의 처벌은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평했다.
딱 하나, 공평치 않은 것이 있다면 백성을 학대하는 영주를 토벌하려던 훌륭한 5인과 보잘것없는 살인자인 나 같은 인간이 이렇게 나란히 쇠사슬에 엮여 있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다르고 고문을 당하지도 않았다. 어마어마한 계획도 없을뿐더러, 동료 따윈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자백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탓에 뼈를 부러뜨리거나 손톱을 뽑히는 일도 당하지 않았다. 그저 등가죽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채찍질을 당했을 뿐이다.
등 한쪽에 불길이 치솟는 듯한 아픔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떤 감각도 없었다. 차가운 비를 맞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추위도 느끼지 않았다.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척이나 기묘한 감각이었다.
“변변찮은 인생이었어......”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좋은 날 같은 건 단 하루도 없었다. 비가 내린 날도 맑은 날도 최악이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어쩌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최악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03P.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엄마의 고함 소리, 그다음은 얻어맞은 기억밖에 없다. 밥은 만족스럽게 먹었는지 어땠는지 의심스럽다. 나는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먹을 것을 훔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식사를 얻어먹었다면 훔칠 필요 따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특별히 나쁜 여자였던 것은 아니다. 따뜻한 식사와 잘 곳을 보장받는 운이 좋은 어린이는 극히 일부였다. 어딘가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모를까, 그런 생활을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실수로 태어나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면서, 정직하지 못한 어른으로 자라,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만든다. 대부분의 여자가 비슷할 것이다. 엄마는 자신이 자란 방식대로 나를 키웠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럭저럭 남자를 상대할 수 있는 연령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는 나를 팔아넘겼다. 지금 떠올려보면 비참할 정도의 푼돈. 팔려 간 곳은 역시 사창가. 엄마와 참으로 닮은 여자들이 볼품없는 남자들의 상대를 했다.
다 늙은 여자뿐만 아니라 내 또래의 소녀들도 있었다. 그중 한 명과 친하게 지냈다. 그녀는 나를 우스 베니라고 불렀고, 그래서 나는 자신의 눈동자의 색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거울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야?”라며 어이없어 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나는 자신의 얼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시콘이라 부르기로 했다. 자신의 얼굴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녀의 눈동자 색은 예쁘다고 느꼈다. 우스베니와 시콘. 그것이 둘만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언젠가 시콘이 “돈 훔쳐서 달아나자”라고 말했다. 우리 둘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도망칠 건지 도망친 다음 어떻게 할 건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04P.
계획은 예상과 달리 순조로웠고 우리는 들 수 있을 만큼 돈을 가지고 마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 강 너머까지 도망쳤다. 거기에는 남자가 말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시콘에게 열중하던 손님이었다. 역시나, 시콘이 “강 너머까지 도망치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될 거야.”라고 말한 건 이런 이유였던 건가라며 납득했다.
틀림없이 나도 데리고 갈 거라고 믿었지만,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은 나를 죽일 셈이었다. 시콘 혼자 옮길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나에게도 말을 걸었던 것이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우스베니.”
그렇게 말하고 시콘은 씩 웃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 아아 그렇구나, 이런 웃는 얼굴로 시콘은 나를 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겨우 알아챘다.
그 순간 추격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분명히 내 목숨은 거기까지였다. 두 사람은 서둘러 도망쳤고 나는 붙잡혔다.
시콘을 원망할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멍청함에 어지간히 화가 났다. 왜 타인의 말 따위 믿었던 걸까. 속은 내가 나쁜 것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강 건너편에서 죽은 것은 시콘과 그 남자였고, 도망쳐서 살아남은 것은 나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다음엔 더 잘 해야 지라며 마음먹었다.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은 몇 개월 뒤였다. 돈을 가지고 도망치는 것은 제대로 했다. 아마도 시콘보다도 훨씬. 추격자가 뒤따르지 않도록 뚜쟁이(매춘부를 관리하는 여성. 기둥서방)도 수하 놈들도 여자들도 모두 죽였다. 어렵지는 않았다. 모두가 잠들었을 즈음을 노려서 한 명씩 죽일 수 있었다.
05P.
제일 먼저 뚜쟁이를 죽이고, 다음 죽인 것은 거친 일을 시키려고 고용한 남자들이었다. 술통에 독을 섞어 두었던 덕분에 남자들은 반죽음 상태였다. 힘이 약한 나도 움직이지 않는 남자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 정도는 문제없었다.
남자들을 정리한 뒤로는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여자는 피 냄새에 둔감하다. 누워 있는 바로 옆에서 짙은 피가 흐른다고 해서 잠을 깨는 여자는 없다. 누구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들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들고 날이 밝기 전에 마을을 빠져나왔다. 물론 추격자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추격자 보다 더 성가신 것이 나타났다. 도적이었다. 녀석들은 너무도 간단히 나를 붙잡고 가지고 있던 돈을 기뻐하며 빼앗아갔다. 목숨까지는 빼앗기지 않았다고 해도 또다시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 분했다.
팔려서 창녀로 되돌아가기 전에 녀석들의 빈틈을 노리고 어떻게 도망쳤다. 이번에는 돈을 챙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니, 섣부르게 돈을 들고 다니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으면 빼앗겨. 필요한 물건은 안 사고 훔치면 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누구도 내게서 빼앗아 가지 못해.
오직 하나, 빼앗길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나 자신다. 엄마가 나를 팔았던 것처럼, 도적의 두목이 나를 팔려고 했던 것처럼, 여자인 이상 항상 약탈의 대상이 된다. 이것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두고 갈 수도 버릴 수도 없으니까.
시콘처럼 남자를 만들어서 자기를 지키게 한다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은 거짓을 말한다. 타인은 배신한다. 그렇다면 지켜주지 않아도 좋아. 내 몸은 스스로 지키겠어.
06P.
아니, 딱 한 번, 딱 한 사람, 함께 살았던 남자가 있었다. 그 지저분한 매춘굴의 손님과 재회한 것이다. 멀고도 먼 낯선 마을에서. 남자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고, 나도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빨리 죽이지 않으면 이라고 생각했다. 뚜쟁이도 여자들도 모두 죽었는데, 나 혼자 살아 있다는 의미를 모를 만큼 머리가 나쁜 남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죽일 수 없었다. 모르는 마을의 한구석에서 나는 그 남자와 살았다. 머리가 나쁜 남자는 아니었지만 성실한 인간도 아니었다. 남자는 자물쇠 따기를 특기로 하는 도둑이었다. 둘이서 강도 짓을 하면서 유쾌하고 즐거운 날들을 보냈다. 이런 생활도 나쁘진 않구나, 라고 나는 남자에 대한 살의를 버렸다.
그 생활도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병에 걸린 것이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몸을 좀먹는, 결코 낫지 않는 죽음의 병. 그것도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감염되는 병에.
죽음의 병을 두려워한 남자는 나를 버렸다. 그 기분을 모르지 않았기에 그뿐이라면 남자가 떠나는 것을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자는 나를 관리에게 팔려고 했다. 그 매춘굴을 침입한「도적」에게는 상금이 걸려있었던 모양이다.
바보 같은 남자다. 나는 병에 걸린 것이 판명된 직후 여전히 증상은 가벼웠다. 일상생활이 심하게 힘들었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한기가 들다가, 갑작스레 싫은 기침이 나오거나...... 그 정도였기에 사람을 죽이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07P.
잠든 순간을 노려 포박하려던 남자를 반대로 해치우는 것은 간단했다. 병으로 깊이 잠들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나는 살기에 과민한 체질이었다. 생각보다도 빨리 나는 남자의 목을 단숨에 베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남자는 죽었다.
그제야 남자에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던 자신을 발견했다. 침식을 함께 하면서 많은 날을 보내고 살의를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언제라도 손이 닿는 곳에 칼을 숨겨두고 있었으니까.
다시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먹을 것이나 의복을 손쉽게 훔치면서 무작정 여행을 계속했다. 전해 들은 대로 병의 진행은 느렸고, 여행도 약탈도 살인도 충분히 가능했다. 훔친 물건의 주인은 그 자리에서 죽였다. 여자든, 늙은이든.
“식량도 돈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죽이지 말아주세요. 살려줘요......”
몇 번이고 이런 말로 살려 달라고 빌었다. 신기해. 죽기 직전이 되자,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지어. 나도 이런 눈으로 시콘을 보았던 걸까. 아니, 나는 목숨 구걸 따위는 하지 않았어.
“혹시라도 살려주면? 너희들은 틀림없이 나를 원망해. 언젠가 나를 죽이려고 할 거야.”
“그렇지 않아......”
“그럴 리가 없잖아. 눈앞에서 엄마가 죽었어.”
그것도, 우리 엄마와 같은 여자가 아닌. 분명 좋은 엄마였을 거야. 온몸으로 딸들을 지키려고 했으니까.
08P.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제멋대로인 말은 하지 않을게.”
그리고 나는 가까이 다가가 떨고 있는 자매를 죽였다. 목숨을 빼앗는 순간에는 분명 원망하고 원망 받겠지만, 이것으로 복수의 칼날이 들이대는 인간은 없어졌다.
그중에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자도 있었다. 나보다도 몇 살인가 어린 소녀였다. 그녀는 분노가 끊어 오르는 눈으로 내게 대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배가 고파서가 아닐까.”
“헛소리하지 마!”
“헛소리라니. 나는 죽을 만큼 배가 고파, 그런데 먹을 걸 살 돈이 없어.”
“그러면, 이런 짓 하지 않아도!”
그녀의 눈앞에는 아빠와 오빠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요리사로 보이는 여자의 시체도. 성가신 사람부터 정리한다. 결과적으로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언제나 어린아이나 늙은이다.
“돈만 가지고 도망치면 되잖아!”
“아아. 음, 그렇지. 이전에는 자신을 원망하는 인간을 늘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째서 일까?”
나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소녀의 목을 쳤다. 숨이 끊어지고 나서도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 두 눈에 분노의 감정을 남긴 채.
09P.
“어째서? 묻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소녀의 시선을 등으로 느끼면서 나는 테이블 위의 빵을 집었다. 무척 배가 고팠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래서 유복해 보이는 이 집에 침입했다. 게다가 식사 시간이었으니까, 곧바로 배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작 그런 이유다. 하지만.
“어째서 인 거지.”
접시의 요리를 손으로 먹고 물병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이 집의 요리사는 솜씨가 좋아.
“왜, 나는 죽이는 걸까? 이만큼이나 죽여왔는데도, 모르겠어.”
바닥을 뒹구는 소녀의 머리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이 죽여온 사람 수 따위 일일이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숫자를 세어볼 마음도 없었다. 아무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죽였다. 이만큼의 생명을 빼앗아왔는데도, 그런 단순한 물음에 대답조차 할 수 없다니.
왜 죽이는 걸까? 왜?
“어쩌면, 그것이 알고 싶어서 죽이는 것인지도 몰라.”
이 답에 완전히 납득한 기색도 없이 소녀의 두 눈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똑같은 생활을 계속했다. 어느덧 이유도 답을 찾는 일도 그만두었다. 마치 호흡을 하는 것처럼 빼앗고, 죽였다.
10P.
아마도 죽인 사람 수가 대략 세 자리를 넘긴 무렵부터, 나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침입한 집의 모든 사람을 죽였기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뭐, 숨길 마음도 없었으니,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았겠지.
어린아이나 노인에 이르기까지 용서 없이 죽이는 것이 젊은 여자에다, 게다가 혼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다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곧 나의 수배 전단지가 뿌려졌다. 행상인들이 소문을 퍼트려, 어느 마을에서도 어느 나라에서 사람들은「분홍빛 눈을 가진 마녀」를 찾았다. 붙잡으면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상금, 정보만으로도 그런대로의 보상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붙잡혔다. 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던 순간에 포위당했다. 그 무렵에는 확실히 병세가 무거워져, 도망은커녕 저항도 하지도 못했다. 요란한 무장을 한 병사들이 과장되게 소란을 피우면서, 나의 손발을 밧줄로 묶었다.
어차피 병으로 죽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나는 형장으로 보내졌다. 죽인 사람 수와 같은 수의 채찍질이 내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끈질기게, 등 가죽이 너덜너덜해지고 살이 갈라질 때까지 채찍질을 당해도 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죽인 사람 수」가 정확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실제 숫자보다도 꽤나 적게 계산된 덕분에 죽기 직전에 형이 끝났다.
11P.
물론 그것으로 용서될 수 없기에 나는 쇠사슬에 묶여, 광장에 방치되었다. 5인의 모반자들과 함께. 내 옆에 묶인 사람은 나이도 차지 않은 소녀였다. 다른 자들이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그녀만은 의연한 말투로 ”우리들은 틀리지 않았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목소리도 결국 약해져갔다. 여기에 방치된 순간 그녀는 누구보다도 쇠약했다. 기력만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상대가 시력을 잃었다는 것을 핑계로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옆에 있는 소녀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정의감이 강하고, 올곧고, 대체로 나와는 정반대인 소녀. 이런 곳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드디어 그녀는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내가 무심코 심한 기침을 한 탓이다. 이 병의 특징이 듣기 싫은 소리의 기침이었기에, 그녀는 옆에 있는 것이 동료가 아니라고 눈치챈 것이다.
“당신은 누구지? 이름은?”
이름 따위 없다고 나는 답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집도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아무것도 없어. 완벽하리 만큼 아무것도. 남은 것은 이 목숨뿐이지만 이제 곧 그것도 사라져 버려. 전부. 차감 제로. 시시해.
그렇다, 시시한 인생이었다. 살아온 의미 따위 전혀 없는 텅 빈 날들. 돌아보면 한심해서 웃음이 멈추지 않아.
울지 말라는 소리가 또 들렸다.
12P.
“웃고...... 있다, 고.”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탓에 흐느껴 우는 것으로 들릴 뿐이겠지. 다음 순간에 호흡이 멈춘 데도 이상하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다.
“진짜야?”
“어어.”
안심한 듯한 한숨이 들렸다. 어느새 비가 잦아들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무척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고, 곧 움직임이 멈췄다.
“이봐......”
대답은 없었다.
“내가 마지막, 인가.”
최후의 한 사람은 5인의 시체와 함께 산 채로 태우기로 정해져 있었다. 그 말을 듣고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었다. 광장에 나온 시점에 이미 한 사람은 죽었다. 비가 내리기 전에 또 한 사람이 죽고,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또 한 사람이 죽고 나서, 나와 소녀만이 남았다.
이런 빗속에서 화형은 무리일 테니, 나는 5인의 시체와 함께 생매장되겠지. 그녀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다행인지도 몰라. 최후의 최후까지 다른 사람을 염려한 소녀가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다니, 잘못됐어.
13P.
잘못돼? 뭐가? 누가?
우리들은 틀리지 않았다는 소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래, 그녀는 전혀 틀리지 않았어. 틀렸다고 한다면 이 세상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영주가 있고, 아무렇지 않는 얼굴로 사람을 죽이는 내가 있고, 약한 자들을 위해서 일어선 사람들이 벌레처럼 죽어나가는 이 세상.
이런 것은, 이상하지 않아.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이잖아!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아니야,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나는 계속 화를 냈던 것이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지만, 화가 나있었다. 나는 이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했다. 이미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먼 옛날부터.
외침에 목이 떨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글거리며 미지근한 것이 입에서 쏟아졌다. 내가 토한 것은 절규가 아니라 피였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나는 살해당하려고 하고 있어. 용서 못해. 용서할 것 같아. 네가 죽어! 너희들이 죽어 버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정신을 들었을 때 눈앞에 꽃이 있었다. 나와 소녀의 시체 사이에 분홍색의 꽃이 피어 있었다.
어느새? 이런 곳에 꽃 같은 게 피어 있었던가?
꽃이 비를 맞으며 흔들리고 있었다. 완전히 처음 보는 꽃인데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눈과 꼭 닮은 색이라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것은 천국에나 핀다는 꽃이고, 어쩌면 나는 이미 죽은 것일까?
아니야. 나는 죽은 것도 천국 같은 데 갈 리가 없어. 죽음을 앞두고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14P.
환상이라도 좋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이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 꽃을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꽃을 갖고 싶다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이 꽃은 좋아.
시선조차 사로잡힌 느낌이었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나는 오로지 그저 꽃을 바라보았다. 어쩜 저렇게 이쁜 걸까...... 하찮은 인생이었지만, 이런 꽃을 보면서 최후를 맞이한다면 나쁘지 않아.
눈앞에 가득 핀 꽃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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